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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월생 May 21. 2023

드라마 작법 강의서 라고 불리는 책

오늘의 책은 [드라마 아카데미]

2005년에 처음 출간된 책으로, 그 당시 감성에 따라 부재는 '우리 시대 최고 작가들의 TV 드라마 작법 강의'이다.

책은 정말 강의처럼 진행된다.


드라마에 관심이 있다면 모를 수 없는 작가분들이 노하우를 나눠주신 책이다.

시대가 변하면서 드라마가 갖는 의미도 달라진 것 같다.

이전에는 드라마는 조금 캐주얼한 영상물로 다뤄졌는데 지금은 그에 비할 수 없이 짧은 쇼츠 영상들이 유행하며, 오히려 드라마가 긴 호흡으로 깊은 주제를 다룰 수 있는 영상물이 되어버린 것 같다.

물론 문학 고전들에는 비할바가 못되겠지만 그건 영 남의 이야기로 취급되는 세상이니만큼, 드라마는 이 시대에서 어쩌면 실제로 사람들의 삶에 유의미한 영향을 끼치는 유일한 픽션이 아닐까 생각했다.


실질적인 결과를 중요시 생각하는 ST(mbti)인 나는, 개인적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소비되는 글이 힘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드라마라는 형태의 극이 좋다.

드라마의 장면들은 쇼츠로 재생산되어 SNS에서 오래도록 소비되기도 하고, 여러 OTT플랫폼들 덕분에 시간과 장소의 제한 없이 더 넓은 곳의 소비자에게 쉽게 닿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작가가 하고 싶은 말이, 쓰는 글의 의도가 가장 많은 사람에게 닿을 수 있는 형식이 아닐까 생각했다.


드라마는 인간의 이야기를 심도 있게, 혹은 유쾌하게, 혹은 아름답게 그려내서, 보는 이들에게 휴식과 기쁨 혹은 감동을 주면서, 그들이 긍정적인 삶을 살아가도록 유도하고 활력을 주는 작업입니다.
어떤 이야기를 쓰든 결과적으로 좋은 영향을 줄 수 있어야 합니다.
예컨대 인생을 날로 먹는 풍조나 세태에 영합하기 위해 지나치게 과장되게 그리는 것 등은 악성 바이러스를 퍼트리는 일입니다.

책에는 이렇게 드라마가 무엇인지에 관한 내용이 나온다. 

작가분들마다 드라마에 대해 각자 다른 철학을 가지고 계시지만, 모두 책임의식을 동반하고 있다는 공통점이 보였다.

위 구절에서 악성 바이러스라는 대목에 너무 공감했다.

높은 시청률을 보이던 어느 예능 프로의 복불복 게임에서 "나만 아니면 돼"라며 만세를 불렀던 것이 이 사회에 아무런 영향도 미치지 않았을까를 생각해 보면 아닐 것 같다는 결론이 나온다.

밈처럼 소비되는 사소하고 장난스러운 말이, 사회구성원에게 영향을 미치고 더 나아가 이 사회에 영향을 준다고 말이다.

자극적인 영상의 소비는 건강에도, 정신건강에도 좋지 않다는 연구결과도 있는 만큼, 대중들이 언제고 소비할 수 있는 드라마는 위의 문장처럼 긍정적인 삶을 살아가도록 활력을 주는 것이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것이 꼭 시청률과 연결되어 소비되지는 않을지 모르지만, 보는 이들로 하여금 긍정적인 삶을 유도할 수 있다면 충분히 가치 있다고 생각한다.

드라마 작가들이 천착해야 할 것은 건강하고 아름다운 인간을 지키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결국 인간의 본질을 파고드는 작업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작가라면 시대가 망가질수록 망가지기 이전의 우리의 모습을 그려줘야 할 의무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망가지기 이전의 우리의 모습을 그릴 의무.라는 말이 조금은 서글프고 동시에 무겁게 다가온다.

시대가 망가질수록이라는 말에 어제 다시 본 [돈룩업]이라는 영화가 겹쳐 생생하게 그려지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훌륭한 비평가는 반드시 훌륭한 창작가가 되지는 않는다. 작품을 만들 때에는 생산자 입장이 되는 것으로, 막상 작품을 쓰다 보면 훌륭하기는커녕 완성 단계에까지 이르는 일조차도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점차 깨닫게 된다.

드라마든 책이든 쓰는 일은 쉬울 수 없다고 생각한다.

글을 시작하기는 쉽지만 끝을 내는 일은 절대 쉬운 게 아니다.

말을 조금 잘못해도 흑역사로 기억되는데, 드라마의 경우 모든 등장인물이 내뱉는 말이 곧 작가가 쓴 글이니 얼마나 그 부담이 클까.

훌륭한 비평가가 훌륭한 창작가가 되는 건 아니라는 문장이 좋아서 남겨본다.


얽힌 실타래처럼 복잡하고 억압적인 현실 속에서도 작가는 살아간다는 사실에 희망을 부여해 주어야 한다.
고통에 동참하는 마음으로 미래를 만들어 가는 사람들에게 힘을 실어주는 일이 작가가 할 사명 아니겠는가? 작품을 통해 인간을 위해서 인간이 살아가는 길을 제시해 주고 안내해 주는 것이 작가가 할 일인 것이다.
결론적으로 가치 선택에 관한 한, 작가 스스로 모든 책임을 지고 오로지 홀로 결단하는 것 외에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드라마를 발표하는 작가는 적어도 사회에 대해 그 정도의 책임을 질 각오를 해야 한다.

작가의 직업적 사명에 관한 내용이었다.

창작하는 모두가 이런 마음으로 창작에 임하면, 분명 이 세상은 더 좋은 곳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보통 영화 한 편을 보기 위해서는 미리 적당한 시간을 내고, 같이 볼 상대를 정하고, 약속을 하고, 예매를 하거나 미리 표를 사서 상영 시간에 맞추어 밥을 먹고, 커피를 사들고 들어가기도 한다. 관람을 위한 사전 준비과정과, 물심양면으로 투자한 것이 있기 때문에 영화 관람객은 스토리가 다소 지루하다고 해서 자리를 박차고 나오지는 않는다.
본격적으로 재미있는 이야기가 들어가기 전에 도입이 다소 길다고 해도 웬만하면 참아준다. 바꾸어 말하자면 충분한 사전 포석 후에 본론으로 들어가는 전개방식이 가능하다는 이야기다.
TV드라마는 영화와는 달리 대부분 시간이 남으니까 본다는 입장이다.

영화와 드라마의 차이를 이야기하는 부분도 흥미로웠다.

드라마는 수많은 채널권을 가지고 있는 상태에서 영화와 달리 정해진 좌석에서 정해진 시간에 보는 것이 아니다 보니 방해요소가 많다.

보다가 끊을 일이 많다는 것이다. 때문에 드라마는 도입 부분이 길면 안 된다는 공식이 있다고 한다.

흥미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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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중후반부는 정말 작법 그 자체에 대한 이야기다.

등장인물을 설정하는 법, 그들에게 서사를 부여하는 법, 주제를 정하는 법, 복선을 설정하는 법 등.

제목 그대로 드라마 작법 강의가 담겨있는 책이었다.

하지만 작법을 배운다고 모두 작가가 되어 이야기를 만들 수 있는 건 아니라고 했다.

다독, 다사, 다작을 통해 끊임없이 사람은 무엇인지, 드라마를 통해 전하고 싶은 가치관이 무엇인지를 공부해야 한다고 말이다.


이 책은 사실 하루 만에 읽기에는 무리가 있는 책이다.

책이기보단 자습서에 가까워서 이 일을 꿈꾼다면 계속 곁에 두고, 필요한 부분을 찾아 공부하며 두고두고 봐야 하는 책이었다.

나처럼 하루 만에 읽으면 결국 앞부분인 작가의 직업적 소명 정도만 기억에 남길 수 있게 된다.

이 책에 관심이 있다면, 후반부 작법에 관한 부분은 따라도 해보고 생각도 해보며 더 많은 시간을 들여 읽어보길 추천한다.

그래도 막연하게 드라마 작가는 어떻게 되는 걸까? 하는 궁금증이 있었던 사람에게도 추천하는 책이다.

나는 책을 덮으면서, 모든 일이 그렇겠지만 이 직업도 정말 쉬운 일이 아니겠다는 결론에 닿게 되었다.

쓰는 일을 하는 모든 사람은 정말 길고 외로운 혼자만의 시간을 필연적으로 견뎌야 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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