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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월생 Oct 02. 2022

가난했던 기억을 갖고 산다는 것은

#10. 가난은 추억이 될 수 있을까?

글로 지난 일을 적어 보일 수 있다는 것은 그 일이 어느 정도 내 안에서 정리가 되었음을 의미한다.

정말 아픈 어떤 기억은 도저히 꺼내 보일 수 없기도 하니까.

내게 가난은 이제 어느 정도 아문 기억이다.

지금 엄청  살아진  아니지만 적어도 우리  식구가 밥을 굶는 일은 없고  없을 예정이니까.

물론 일을 멈추지 않는다는 조건이 선행되어야 하겠지만.


그런 말이 있다. 가난은 죄가 아니라는.

 책도 있다. 가난이 어떻게 죄가 되는가.라는 제목의.

가난이 죄가 아니라는 사람들은 아마도 가난을 경험해보지 못한 사람이 아닐까 생각한다.

가난해보니 그것이 잘못이라고 한 사람은 없었지만 내 사정을 살피거나 돌보게 만든 것 자체로 그것은 죄가 되었다. 여유롭지 못해 금전적으로 보탬이 될 수 없던 순간에도 죄스러워야 했다.


다른 여느 걱정과 달리 돈 걱정은 매우 현실적이다.

이번 달에 필요한 금액과 그에 미치지 못하는 현실이 금액으로, 숫자로 분명하게 나타나기 때문에.

이 명확한 수치는 나를 날 서게 하고 날이선 나는 결국 가장 가까이 있는 사람을 상처 준다.

좁은 집은 영혼을 다치게 만든다는 글을 읽자마자 공감했다.

그 문장이 무슨 의미인지 이해할 수 있다는 사실이 그 자체로 애처롭게 느껴져 조소를 머금었던 기억이 난다.




과연 모두가 이런 경험을 안고 살까? 누구나 예외는 없는 걸까?

살다 보면 언젠가 내가 겪어낸 가난의 경험이 내게 꼭 필요했었다 말하게 되는 날이 오게 될까 궁금했다.

그렇게 얻게 된 가치가 무엇이어야 가난을 지나오며 마주했던 모든 상처가 보상받는듯한 기분인건지도.

괜찮아졌다고 생각했을 때부터 시작이었다.

나는 꽤나 오랜 시간 동안 도대체 어떤 방법으로 나를 위로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갖고 싶은 걸 사고, 불필요한 사치품들에 돈을 쓰면서 그렇게 나아지는 게 아닐까 짐작했다.

사실은 아직도 잘 모르겠다.

이제는 내가 완전히 괜찮은지를 말이다.


내가 생각하는 여유 있는 사람은 보이지 않는 곳에 돈을 쓰는 사람이다.

들고 다니는 명품이 아닌 그냥 혼자 모아놓고 보는 누구도 알 수 없는 그런 것들에 돈을 쓰는 사람.

그래서 언젠가 여유가 생기면 값비싼 오르골을 모으겠다고 혼자 결심했었다.

좋은 진열장에 비싸고 소리가 좋은 그런 오르골을 소중히 보관해두고 그걸 지켜보면 위로받는 것처럼 느껴질  같아서.

이런 게 진정한 치유가 될지는 나도 잘 모르지만 이런 가시적인 계획이 있어야, 그런 순간을 마주했을 때 '비로소 다 끝났구나.' 하고 분명하게 결론 지을 수 있을 테니까 일단은 가지고 있기로 했다.

어떤 집에서 얼마만큼의 통장 잔고를 가졌을 때 저 계획을 실행해야 정말 끝이라고, 더 이상 가난은 나와 상관없는 일이구나 완전하게 선언할 수 있을까?

이미 나는 좁은 집은 영혼을 다치게 한다는 말에 공감하며 애처로워하는,

어떻게 가난이 죄가 되는지를 아는 어른으로 자랐는데,

이 모든 일을 없었던 일 마냥, 마치 전생이었던 것처럼 취급할 수 있는 시간이 올까?

모르겠다. 잘 모르겠다.


럼에도 분명하게   있는 ,  이상 가난하지 않아야 가난을 추억할  있다는 사실이다.

또 하나 알게 된 건 가난했던 기억과 경험은 생각보다 훨씬 인생에서 도움이 되어 준다는 사실이다.

자기 위안일지도 모르겠지만 그 경험은 나를 현실적인 사람으로, 단단한 사람으로 만들어주는데 가장 큰 지분을 차지한다.

넉넉하고 여유로운 사정일 때는 결코 알 수 없는 것들을 알게 되고, 할 수 없는 경험들을 하게 되는데 그런 것들이 나를 성장시켰다고 확신한다.

그러니 이왕 가난했던 기억을 가지고 있다면 그 경험을 꼭 나쁜 거라고만 생각하지 않았으면 싶다.

좋은 게 좋은 것만은 아니듯, 나쁜 게 나쁜 것만은 아닐 테니까.

그때를 생각하면 여전히  시절의 내가 가엾고  안타깝지만 이런 연민에서 한걸음  나아가, 나는  시간을 관통해오며 한층  두꺼운 갑옷을 입게 되었다고 그렇게 강해진 거라고 믿고 싶다.


가난했던 기억을 갖고 산다는 것은,

 기억을 안고서도  살아내고 있다는 것은,  아주 강하고 단단한 어른이라는 방증이다.

가난을 경험한 아이가 결국 자라 강하고 단단한 어른이 되어,  시절 얻게  갑옷을 입고 거침없이 사회를 활보하며 아무런 상처도 입지 않고 그저 행복하길 응원하며 이 글을 마무리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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