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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월생 Oct 03. 2022

나는 몰랐던 아빠의 꿈

#11. 우리 아빠에게도 꿈이 있었다

나는 자신 있게 아빠와 아주 가깝다고 얘기할 수 있는 딸이다.

가정사로 인해 학교에서 멀리 떨어진 곳으로 이사  이후 아빠는 내가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그러니까 거의 3 정도의 시간 동안 의 등하교를 책임지셨다.

덕분에 매일 아침저녁으로 차에서 아빠와 수많은 대화들을 눌 수 있었다.

아마도 고등학생으로는 거의 유일하게 하루  간씩 꾸준히 아빠와 시간을 보낸 사람이 아닐까 싶다.


성인이  지금도 우리는 여전히 자주 대화한다.

그래서 나는 내가 아빠를 아주  안다고 확신했었다.

어느  문득 아빠의 일기장을 보게 되기 전까지는.

아빠의 일기장 속에는 많은 질문들과 그 질문들에 대한 아버지의 답이 열에 맞춰 적혀있었다.

여행하고 싶은 , 배우고 싶은 , 앞으로의 도전과  그리고 감사한 사람과 기쁘게 하고 싶은 사람은 누구인지  다양한 질문들이 있었다.

보기 전에는 몰랐었다.

아빠가 히말라야에 가서 트레킹을 해보고 싶어 하신다는 것과 드론과 한의학을 배우고 싶어 하셨으며 언제가 되었든 우주선을 타보거나 혹은 비슷한 무중력 체험을 하고 싶어 하신다는 것을.

기쁘게 하고 싶은 사람엔 엄마 성함 세 글자가 무심하게 적혀있었고 감사한 사람을 묻는 질문 밑에는 오빠와 내 이름이 있었다.

언제 여쭤봐도 가지고 싶은  없다고 하셨고, 여행지를 고를 때도 아빠의 의견은 들어본 적이 없었는데, 내가 몰랐던 아빠는 꿈이 많은 사람이었다.


아빠를  알고 있다는   자만이었다.

아빠를 아빠로는  알고 있었지만  개인으로는 얼마나 알았을까. 아빠이기 이전에  사람으로서의 아빠 인생에 너무 무심했던 딸이었다는  그제야 자각했다.


돌이켜보면 아빠는 나에 대한 질문을 했고 나는 대답을 했다.

 역시 아빠에게 질문했지만 그건 사회에 관한 혹은 어떤 현상에 관한 아빠의 의견이었지 아빠의 인생에 대한 질문은 아니었던  같다.

 이야기를 한다는 , 그리고  이야기를 재미있게 듣는 청자가 있다는  얼마나 신나는 일인지 알면서  질문하지 않은 걸까 후회했다.

너무  안다고 생각해서 질문하지 않았었는지도 모르겠다.


우연한 기회에 이렇게 아빠의 꿈을 엿보게   행운인지도 모르겠다.

젊은 날 태어나 처음 족발었던 기억을 잊을 수 없어하신다는 것도,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보시고 깊게 감명받았다는 아빠의 취향도 덕분에 알게 되었다.

아빠는 아직도 내가 아빠의 이야기를 살짝 엿보았다는 사실을 모르고 계신다.

그걸 보고 난 이후 나는 아빠에게 질문이 많아졌다.

전부 다 기억하고 기록해서 그 모든 꿈들을 이뤄드리고 싶다.

아빠가 우리의 꿈을 위해 일평생을 노력하셨고 앞으로도 그러실 것이기에 나 또한 아빠의 꿈을 위해 노력할 것이다

.

오늘 아침엔 이런 질문을 했다.

“아빠는 언제 가장 행복해?”

아빠는 대답하셨다.

“지금. 이렇게 우리가 다 같이 이야기할 때.”


왠지 부끄러워 직접 말하지는 못했지만 아빠의 대답을 듣고 다짐했다.

아빠가 행복한 지금 같은 순간이 영원하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나이가 들고, 세월이 지나 나에게  다른 가족이 생기게 되더라도, 언제나 그랬듯이  같이 모여서 각자의 하루를 나누는 시간을 꼭 만들 거라고.

그렇게 되도록 내가 내 인생을 걸고 노력할 거라고 스스로와 약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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