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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월생 Jun 30. 2022

야, 미니멀 라이프라며

주문을 멈추게 하는 주문

"엄마 나 이거 살까 봐."

"00아, 미니멀 라이프 한다며."


미니멀 라이프를 시작한 이후 나는 자주 휘둘린다.

주변에 큰소리로 선언해둔 게 문제였던 걸까.


MBTI 검사를 몇 번을 다시 해도 ESTP가 나오는 나는 어느 일에도 조언이나 의견을 잘 구하지 않는다.

내 의견과 결정에 대한 믿음이 100%라, 누구도 나보다 더 내 일에 관해 좋은 선택을 할 수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ESTP 특성 중 하나가 남들의 말을 한 귀로 흘리지 않고 두 귀로 흘리는 거라고 적혀있던데, 너무 정확해서 깜짝 놀랐다. 

그렇게 지난날의 나는 독단적으로 한 달도 안 되어 서랍행이었던 카메라를 구매했고, 있으면 부지런히 일기를 적을 것 같아서 아이패드를 구매했다.

쓸데없이 그럴 때 머뭇거림이 없다.

생산적인 일에 그만한 적극성과 추진력을 발휘하며 좋겠지만, 애석하게도 소비하는데 주로 쓰인다.




여하튼 그래 왔던 내가 저 말에 주문을 멈춘다.

집에 오는 택배 앞에서 괜한 변명을 하게 되고, 새로운 옷을 입고 나가기가 부끄러워졌다.

'미니멀 라이프가 혹시 나를 작아지게 만들고 있는 건가??? 당장 그만둬야 하나??!!' 싶다가도 

그러기엔 너무 멀리 왔고, 나를 모르는 사람들 조차 댓글로 구독으로 나의 미니멀 여정을 지켜보고 있다고 생각하니 막무가내로 그만해버리기가 좀 그랬다.

구독에 대한 부채감이랄까?

그리고 무엇보다 나는 정말로, 내 깊은 마음속 깊은 곳은 진심으로, 

멀지 않은 미래에 의류를 포함한 모든 생필품을 하나의 캐리어에 넣을 수 있도록 간단하고 간결해지기를 바라고 있다.

아 물론 프라이팬이나 냄비 같은 것은 제외.

선풍기 같은 것도 제외.

(의류와 펜. 아이패드, 카메라 노트북 같이 무인도에 굳이 들고 가지 않을 그런 것들만이 대상이다.)


아무튼 그래서, 끝끝내 요즘 나는 차마 주문 버튼을 누르지 못한다.

솔직해 매번은 아니지만 열 번 중에 7번은 누르지 않고 그 순간을 넘긴다.

주변에 "살까?" 묻지 않고 사버리면 되지만, 굳이 묻는 건 사지 않고 싶어서인 것도 같다. 

다시금 스스로 부끄러워지라고, 뭘 결심했었는지 잠시 잊었다면 누군가에게 들어서라도 알게 되라고 질문하는 것 같다.

대체로 주변 지인들은 "미니멀한다며" "비우는 삶을 산다며" 하는 답변을 건네준다. 

고맙게도 의도에 맞는 정답을.

덕분에 덜 소비하고 올여름을 지나 보낼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한다.

아무리 생각해도 캣아이 선글라스 하나는 필요한 것 같지만 그마저 사지 못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한다.

주변의 시선 때문이 아니라 내가 지난 글을 썼던 나를 실망시키지 않고 싶으니 말이다.


원래의 고민은 배송을 늦출 뿐이었는데, 요 근래의 고민은 배송을 멈췄다.

고무적이라고 생각한다.


세일은 못 참지! 했었는데, 이번엔 참았다.

대견하다.

아직 남은 세일이 한가득이니, 내가 끝까지 잘 참아내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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