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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월생 Sep 12. 2022

우리 집에 사는 진정한 미니멀리스트

언제부터 우리 집에 계셨나요?

얼마 전 당근에서 옷이 팔렸다. 

올려놓은 옷을 팔고 선불로 돈까지 받았는데 그 옷을 찾을 수가 없었다. 

엄마에게 sos를 요청했고 엄마와 함께 옷더미를 뒤적이길 30분, 비닐채로 쌓여있는 해당 옷을 발견했다.

다시금 갑갑함이 치밀어 울분을 토했다. 


"이 많은 옷이 필요할까?? 다 버려버릴 거야. 이사할 때 들고 갈 옷은 인당 8벌이야!! 무조건이야!!!"

말도 안 되는 말로 가족들을 협박(?)하며 분을 뿜어내는 나를 보며 엄마가 한마디 했다. 


"이 아까운걸 왜 다 버리니? 버린다고 맘먹기 전에 더 사지나 말어. 우리 집에서 너만 이래."

-

'어머?'

생각해보니 그랬다. 

물건이 갑갑한 것도, 소비에 대한 기준을 만들고는 지키니 못 지켰니 하는 사람도, 가족 중 나 혼자 뿐이었다. 


미니멀 라이프 안에서도, 아니 미니멀 라이프이기에 더더욱 나는 최적의 상품, 

그러니까 오래도록 나를 만족시킬, 결코 싫증 나거나 일찍 못쓰게 되면 안 되는 단 하나의 완벽한 물건을 찾기 위해 돈과 시간을 소비했다.

 

반면 엄마는 그렇지 않았다. 

많은 것들을 버리고 비워내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그것들에 얽매이지도 않는다. 

어디에 무엇이 있는지 다 파악하고 있으며, 특정 물건의 유무와 엄마의 일상은 무관하게 존재한다.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의 마인드로. 

내가 30년간 들어도 질리지 않을 완벽한 가방을 찾는 시간에 엄마는 내가 언제 사뒀는지도 모를 에코백을 들고 외출을 하신다. 

아빠야 뭐 말할 것도 없이 애초에 소비 자체에 관심이 없으신 편이다.


그렇게 알고 보니, 자기 삶의 본질에만 집중하는 진정한 미니멀을 실천하고 있는 쪽은

결심을 백번쯤 하고 이런 글을 쓰고 있는 내가 아닌 엄마 아빠였다.


쓰지 않는 텀블러와 가방들을 다 팔거나 버려버리겠다고 말하는 나보다,

집에 있는 텀블러와 내가 더 이상 사용하지 않는 에코백을 들고 산도 가고 도서관도 가고 마트도 가는 엄마 아빠야말로 진정한 미니멀리스트였다.


넷플릭스에서 미니멀리즘을 실천하는 사람들을 보고 배울 것도 없었다.

이렇게 내 곁에 늘 함께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등잔 밑이 어둡다더니(?)


나는 뭘 하는 중이었던 걸까.

곰곰이 생각해보니, 나를 간결하게 만드는 미니멀라이프를 지향하며, 

모든 일상을 내 통제 아래 두고 싶어 했던 나는, 

이를 위한 준비에 또 다른 소비를 하거나 내 시간을 빼앗기는 중이었다. 몹시 멍청했다.

-

이 사실을 자각한 이후 새로운 롤모델을 따라 하기로 했다.

곁에 있는 롤모델을 따라 하는 일은 쉽고도 어려웠다.

지켜보니 엄마 아빠의 미니멀 비법(?)은 물건의 필요를 따지기보단 그냥 필요한 일이 생길 때 집에 있는 것들을 찾아서 사용하는 것이었다.

맥시멀리스트 딸 덕분에 집에 모든 게 거의 다 있어서 가능한 방식의 미니멀라이프인게 아닐까 싶기는 하다.


여하튼 이 방식은 내게 오히려 도움이 되었다.

완벽한 한 가지를 찾기 위한 노력을 할 필요가 없었다.

무언가가 필요한 상황이 생기면, 그냥 있는 것부터 쓰면 되는 거였다.

오래도록 사용할 수 있는 '미니멀리스트인 나'를 위한 맞춤 물건을 구매하기 위해 고민했던 건, 

정말이지 바보 같은 일이었음을 깨달았다.


아직 갈길이 먼 미니멀리스트의 또 하나의 앎이었다.

이로서 제일 앞에 오게 된 새로운 수칙.


[뭘 사려고 하지 말고 있는 것부터 다 써라] _by.YM (엄마의 이니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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