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하구 낙동대로를 지나는 길은 이제 나의 일상이다. 차창 밖으로 스쳐 지나가는 상가들
그 문 앞마다 선명하게 붙어 있는 ‘임대’라는 붉은 글씨가 눈에 밟힌다. 그 두 글자가 요즘의 불황이 얼마나 깊게 자리 잡고 있는지를 말해주는 듯하다.
단순한 안내문처럼 보이지만, 나에겐 그 글씨가 누군가의 꿈이 접힌 자리처럼 느껴진다. 노력과 희망이 녹아 있던 공간이 빈 채로 오래 남아 있는 걸 볼 때면, 마음 한켠이 무거워진다.
이 불경기는 과연 언제쯤 끝날 수 있을까.
대답 없는 질문이 머릿속에 맴돈다.
그럴 때면, 가게 주인의 마음을 상상해본다. 아마도 깊은 고민 속에서, 이자에 쫓기고 빚에 허덕이며 하루하루를 버텨내고 있을 것이다. 내가 아는 분이라면, 조용한 찻집에 앉아 따뜻한 차 한 잔을 건네며 말없이 위로하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남의 아픔을 마주하고 마음이 무거워질 때, 나는 스스로를 다독인다. 장사를 하지 않아 큰 빚은 없고, 요양보호사로 일하며 매달 정해진 월급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에 감사함을 느낀다. 이렇게 작고 소박한 감사가 지금의 나를 지탱해주는 힘이 된다.
남편도 요즘 부쩍 걱정스러운 말을 자주 꺼낸다. 한때 사람들로 북적이던 남포동과 서면 상가도 이제는 빈 점포가 많아졌다는 소식을 전하며, 이런 현상이 결코 개인의 게으름 때문만은 아니라고 말한다. 나 역시 고개를 끄덕인다.
세상은 너무 빨리 변하고, 사람들의 발걸음은
너무 바빠졌다. 이제는 개인의 노력만으로 감당할 수 없는 시대가 되었다. 경제 불황이라는 말은 뉴스에 나오는 숫자보다, 이렇게 거리 곳곳에서 피부로 느껴진다.
이 불안감은 우리 세대만의 일은 아니다. 조카와 친구의 자녀들도 대학을 졸업했지만 몇 년째 취업을 하지 못하고 있다. 그들의 마음도 얼마나
타들어갈까. 그 모습을 볼 때면, 나의 20대가 떠오른다. 대학을 졸업하고 임용시험을 준비했지만 낙방하고, 여러 길을 두드려보다가 결국 학원에서 강사로 일하게 되었던 시절. 당시 나에게 학원을 찾아오는 학생 한 명, 한 명은 모두 소중한 손님이었다. 그래서 더 정성껏, 진심을 다해 가르쳤다.
그 시간들은 나에게 일이란 단순히 생계를 위한 수단이 아니라, 그 안에서 의미를 찾고 최선을 다할 때 비로소 가치가 생긴다는 것을 알려주었다. 지금도 청년 구직자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그 마음이 너무도 이해된다. 그들도 분명 일하고 싶어 안간힘을 쓰고 있을 것이다. 청년의 취업난은 어쩌면 세대를 넘어 반복되는 과제인지도 모르겠다.
요즘 나와 같은 60대는 ‘낀 세대’라는 말을 자주 듣는다. 우리는 부모님을 정성껏 모셨지만, 자식에게 그런 기대를 하긴 어려운 시대를
살고 있다.
그 속에서 문득 논어의 한 구절이 떠오른다.
“나무는 고요히 있고자 하나 바람이 그치지 않고, 자식은 봉양하고자 하나 부모가 기다려주지 않는다.”
이제는 반대로, 부모가 자식을 걱정하며 살아가는 시대가 되었다. 자식이 결혼을 하지 않아서, 직장이 없어서, 부모의 마음은 여전히 안타깝고 간절하다. 옛날과는 다른 모양이지만, 그 사랑의 깊이만큼은 변하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조용히, 지금을 살아가는 젊은 세대에게 말하고 싶다. 대기업에 가지 못했다고 실망하지 않아도 괜찮고, 결혼을 하지 않았다고 주눅들 필요도 없다. 주어진 현실 안에서 분수에 맞게, 정직하게, 자신만의 속도로 천천히 걸어가도 충분하다. 우리 부모 세대는 그런 모습만으로도 대견하고 감사하게 여긴다. 사회가 요구하는 성공의 틀에 맞추지 않아도 된다. 오히려 자신만의 방식으로, 자신만의 속도로 꾸려가는 삶이야말로 진정한
삶의 의미를 가진다.
인생은 마라톤과 같다. 출발이 늦어도 좋고, 잠시 멈춰 서도 괜찮다. 중요한 건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자기 걸음으로 완주하는 것이다. 빠르게 변하고 경쟁이 치열한 시대일수록, 자기 속도를 잃지 않고, 묵묵히 걸어가는 이들이 더욱 빛나 보인다.
오늘도, 나는 낙동로를 따라 지나가는
풍경을 바라보며 생각한다. 살아낸다는 것,
그 자체로 얼마나 눈부신 일인가.
그렇게, 묵묵히 삶을 걸어가는
당신의 오늘을, 나는 조용히 응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