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를 기록하다
초등학교를 다니던 어느 여름날이었다. 방학이었던 것으로 기억이 나는데 동생과 함께 집에서 좀 떨어진 수영장에 놀러가게 되었다. 집에서 꽤 멀었던 곳이었는데, 아빠가 운동을 하시던 곳 근처이기도 해서 아빠가 운동 가시는 길에 우리를 수영장에 내려주셨다.
몇시에 다시 만나자. 몇시까지 오라는 그런 이야기는 없었던 것 같다. 수영이 끝나면 다시 집에 가야하니까 공중전화를 이용해서 아빠에게 전화를 해야했었던 상황 정도만 기억이 난다.
수영장에서 놀고 있는데 동네 친구들 무리를 만났다. 어쩌다보니 같이 놀게 되었는데 그 친구들은 동네까지 걸어서 간다는 이야기를 했다. 나와 동생은 그 일이 재미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우리는 친구들과 놀다가 수영장을 나와서 집까지 걷기 시작했다. 처음 걷는 길이지만 평소 자동차를 타고 왔던 길이라 낯설지 않았고, 집으로 가는 길이 멀지 않은 것처럼 느껴졌다.
한참을 걷고 또 걷다가 어두워졌다. 그제서야 우리는 아빠에게 연락을 했었어야 한다는 사실이 기억이 났다. 그리고 어느 공중전화에 들어가서 집으로 전화를 했다.
신나게 걸으며, 탐험하던 나와 동생과는 달리 아빠는 화가 나 있었다. 너무 오래전일이라 기억이 뚜렷하지 않지만 왜이제 전화를 걸었냐고, 어디서 무얼하고 있냐고, 우리의 상황을 걱정하는지 그냥 화를 내시는지 구분이 안갈정도 였던 것만 기억이 난다.
마냥 친구와 놀다 집으로 가는 길에서 별 두려움 없이 둘이 이야기하면서 뭔가 걸어서 가는 걸 스스로 대단하게 여겼었던 초등학생 2명과 운동이 끝나고 나서 수영장에 들렸지만 없는 우리 때문에 걱정 했을 아빠, 핸드폰도 없던 시절 여기저기 찾아다니며 얼마나 노심초사 했을까 상상이 잘 안간다.
그냥 어린시절 왜 나의 탐험은 아빠에겐 화를 내는 버튼 같은 걸까?라는 생각만 했었다. 아빠와 나의 생각의 간극은 참 컸던 듯 하다. 어린 나에겐 아빠의 큰 세상과 두려움과 걱정이 보이지 않았다. 우리 아빠는 화를 잘내는 사람, 다혈질인 사람이라고 규정짓고 아빠는 늘 뜻하지 않은 상황에서 화를 내는 구나 어렵다 라고만 받아들였다.
아이를 낳고 키우면서 단 한순간 아이를 놓친적이 있다. 부산역에서 집으로 가는 기차를 기다렸던 순간이다. 동생이 배웅하려고 나와주었기에 잠시 아이를 맡기고 화장실에 다녀왔었던 상황이었다. 다녀와보니 아이가 없었다. 동생은 내가 아이를 데려간 줄 알고 있었고, 나는 맡긴 줄 알고 있었던 상황이었다. 순간 아찔해졌다. 어떡하지? 할 겨를도 없이 부산역 대합실을 두리번 거리며 아이의 이름을 외치며 찾기 시작했다. 그러다 울며 나를 찾고 있는 아이를 발견했다.
시간이 정말 몇분 정도 밖에 흐르지 않았는데, 아찔한 감정때문인지 시간이 길게 느껴졌다.
나와 동생은 도대체 몇시간이나 연락이 되지 않았던 걸까? 몇분도 정말 힘들었는데 아빠는 어땠을까?
부모가 되고 나서야, 아빠의 마음을 조금 이해하게 된다.
나에겐 집으로 가는 시간이
아빠에겐 아이들을 잃어버릴 두려움의 시간들이었을...
어린 나는 너무 어려서 아빠를 이해하지 못했고, 지금의 나는 나의 시간이 더 중요해서 아빠의 시간을 기억 저편으로 미뤄놓고 있다. 이제야 이렇게 겨우 꺼내어 그 시간 속에 아빠의 마음을 들여다본다. 그 시절의 아빠를 기억하며, 아빠의 사랑을 느낀다.
과거에나 지금에나 나는 여전히 아빠의 사랑 속에서 자랐구나.
그것을 표현하는 방법이 다를 뿐, 아빠는 계속 그렇게 나를 위해 존재했구나.
그 큰 사랑의 나무 그늘 아래서 자랐으면서 혼자 큰냥 혼자 옳은냥 살아가는 나를 잠시 반성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