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에게 쓰는 편지
너와 함께한지 4023일째 날
오늘은 너와 함께 집 앞 공원을 함께 뛰었네. 걸어서 5분 정도의 거리에 있는 공원은 너가 걸음마를 했던 순간부터 지금까지 10년째 너와 가장 많은 추억이 있는 장소이기도 해. 지난주까지는 금요일마다 축구를 가야해서 같이 공원에 갈 시간이 주중에는 거의 없었는데 이번주부터는 시간이 생겼구나.
마침 오늘은 날이 너무 좋았어. 바람도 선선하고, 몇 주간의 무더위가 달아난 것처럼 말야.
공원에 같이 가 준 것도 너무 고마웠는데, 왜냐면 넌 저녁을 먹고 게임을 하고 있었거든. 초등학교 5학년 남자 아이가 엄마가 같이 공원에 가자고 했을 때 흔쾌히 들어주는 아이가 많을까? 전에 몇 번 거절을 당했던 경험이 있기 때문에 이번에는 같이 가 준게 참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아.
여름 방학을 하면서 같이 계획 세웠던 것이 기억난다. 일주일에 두 번은 엄마랑 같이 운동을 하자고 제안했고, 넌 알겠다고 고개를 끄덕였지. 생각해보면 어떤 것을 제안했을 때 싫다고 말하는 적이 많이 없기도 한 것 같아서 엄마는 어떤 순간 싫다고 하는 너에게 너무 강요했던 순간순간이 떠올라 좀 부끄럽기도 하고 그렇다.
오늘 같이 뛰는데 너가 정말 많이 체력적으로 강해졌구나 했음을 느꼈어. 슬로우러닝을 하는 엄마에게 엄마 왜 이렇게 늦게 뛰냐고 잔소리를 하면서 더 빨리 뛸 수 있는데 안 뛰는 것 같다. 운동을 할 때는 미친듯이 힘들게 해야 체력의 한계를 부스고 더 좋아질 수 있는 거다. 등등 태권도 사범님께 배운 운동에 관한 지식들을 조잘대며 옆에서 뛰어주는 니가 귀엽기도 했어. 그러면서 빨리 2바퀴를 뛰고 집에가서 게임을 하고 싶다고 말하는 너에게 엄마는 그럼 속도 올려서 뛰라고 했고, 넌 저 멀리 달아나 버렸지.
그런데 천천히 뛰어가다 보니 너가 엄마를 기다리고 있더구나. 너를 키운지 이제 10년 밖에 되지 않았는데 넌 벌써 나를 기다려주는 존재가 되었다니 너무 놀라웠어. 1.4km가 되는 공원을 한 바퀴 뛰고도 별로 힘들어하지 않고 두 바퀴째 같이 뛰다보니 엄마는 욕심이 생겼어.
내년 봄에 너와 함께 10km 러닝에 도전하는 것에 대해서, 뛰다가 생각이 나서 같이 해보지 않겠냐고 제안을 했고 넌 또 아무렇지도 않게 그러지뭐 하고 이야기 했어. 10km를 뛰기 위해서는 이 공원을 7바퀴 정도는 쉬지 않고 뛰어야 한다는 이야기를 했고, 지금이 8월이니 매달 한바퀴씩 추가해서 뛰다보면 내년 봄에 우리는 10km를 뛸 수 있을 거라는 장미빛 목표를 나눴지.
갑자기 너가 막 걷기 시작했던 때가 떠오른다. 남보다 참 뭐든 늦었던 우리 아들. 하지만 늦더라도 그 순간부터는 제대로 했던 너. 너가 걷기 시작하면서부터 엄마는 우리가 오늘 함께 뛰었던 공원에 참 많이도 왔었어.
앞서가며 종종거리며 걸어가는 너를 보며 그 뒤를 졸졸 따라갔지. 생각해보니 그때도 넌 엄마 앞에서 걸어가고 뛰어가고 있었구나. 지금처럼.
바라만 봐도 참 예쁜 아들, 너와 함께 뛸 수 있었던 오늘이 참 소중하구나. 내년 봄에 너의 10km를 뛴다는 상상만으로 행복해졌다. 너는 나에게 늘 그런 존재. 존재만으로 기쁨과 행복을 주는 아이. 그래서 엄마는 너를 핸드폰 이름에 엔돌핀 아들이라고 저장해두었지.
너가 잘 못 뛰어서 뒤에서 끊임없이 독려하고, 너의 승부욕을 자극하기 위해 같이 열심히 뛰어도 보고 했던 때가 불과 1-2년 전인데 넌 이제 엄마보다 발도 손도 더 큰 아이가 되었네. 사람이 신체적으로 자라난다는 것은 참 신기하고 감사한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자란다는 기적. 그 기적의 순간을 함께할 수 있어 감사해.
오늘의 바람과 공기를 기억할게. 사랑해 아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