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에게 쓰는 편지
너와 함께한지 4024일
엄마는 너로 인해 사랑이 무엇인지 배우고 있어.
그 시간들을 기록해.
나는 너를 언제부터 사랑했을까? 산부인과에서 처음으로 임신했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을 때부터일까? 아니면 뱃속에 있는 너와 끊임없이 이야기를 시작하면서부터 였을까? 너가 태어난 날 너를 처음 안아봤을때부터 였을까? 솔직히 기억나지 않는다.
내가 이런 존재를 다시 만날 수 있을까? 싶은 생각이 든다. 이렇게 사랑하는 존재를 만날 수 있었다는 그 사실 자체만으로도 감사해. 육아의 어려움 때문에 출산을 기피하는 요즘, 엄마는 너를 키우며 느꼈던 사랑의 감정들을 다른 사람들도 느껴봤으면 하는 바램으로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출산을 고민하는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꼭 아이를 낳아서 키워보라고 이야기를 하곤 했어.
너를 사랑하는 순간들을 이렇게 글로라도 기억하고 싶어. 그냥 가장 인상적이었던 순간을 꼽아보라고 하면 너가 처음으로 배넷웃음을 지었던 순간이었어. 모유수유를 하느라 종일 힘들었는데 저녁 시간 수유를 끝내고 난 후 너를 품에 안았는데 너가 미소를 짓더구나. 그때의 너의 미소를 엄마는 잊을 수가 없어. 정말 힘든 날이었는데 너의 미소를 보고 하루종일 피로가 풀리는 느낌이었어. 누군가를 사랑한다는게 이런 느낌이었던 걸까? 하는 생각마져 들었어. 내 품에 안긴 생명을 위해 모든 걸 주어도 아깝지 않은 느낌, 이 미소를 지켜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
그 이후로도 무수히 많은 순간 엄마는 너를 사랑하고 있어. 아침에 일어날 때 마다 눈 마주치면 방긋 웃어주는 너의 모습을 사랑했고, 식탁 앞에 앉아서 새로운 음식을 먹을 때마다 신기하게 바라보는 널 사랑했지. 처음 바닷가에 데려갔을 때도 기억이 난다. 엄마는 흥분에 가득 차 너에게 바다와 모래를 보여주고 싶었어. 그런데 넌 바다가 무엇인지 몰랐던 것 같아. 그저 멀리서 보기만 했으니까, 대시 모래는 가까이 가서 만져보았지. 난 니가 모래를 막 만지고 모래를 탐험하고 하는 모습을 상상했었어. 그런데 너는 모래를 두려워했지. 처음 만져보는 그 이상한 물질을 너는 의심스럽게 바라봤어. 무언가를 의심스럽게 바라보며 낯설아하는 너의 모습이 엄마는 너무 귀여웠어. 누군가의 첫 순간에 이렇게 함께할 수 있다는 건 정말이지 엄마의 인생에서 가장 멋진 경험이었거든.
너는 참 배밀이도 빨리도 했었지. 느릿느릿 가지고 않고 마치 슬라이딩 하는 것처럼 다니는 너가 너무 웃겼어. 배밀이는 엎드리기 전 단계에 아기들이 움직이기 위해 하는 행동인데 배밀이를 하면서 가고 싶은 곳에 가는 너의 모습이 참 이쁘고 사랑스러웠던다. 그러다 기어다기고, 일어서기 위해 무수히 많이 넘어졌던 그 모든 순간을 참 사랑했어. 너를 키우는 모든 순간이 사랑 그 자체였다.
너는 아침에 일어나면 이불위에서 뒹굴 하지도 않고 벌떡 일어나 저벅저벅 거실로 나가 놀았지. 엄마는 니가 좀 뒹굴기를 바랬는데 너는 그냥 뒤도 안 돌아보고 나갔어. 졸린 눈을 비비며 널 따라 나가면 넌 책장에 꽂혀있는 책들을 모조리 꺼내서 방바닥에 늘어뜨려 놓았어. 정말 매일 아침 그런 일들이 반복되었어. 엄마가 다시 책을 꽂아 놓으면 그게 마음에 안 들었는지 다시 또 바닥에 내려 놓더라고, 그래서 난 니가 잠들면 책장을 다시 채우곤 했지. 매일 같이 그렇게 책을 꺼내는 니가 참 귀여웠다. 어느 순간 책 한권을 뒤집어 들고 뚫어지게 보는 너를 보는 것이 너무 좋았다.
정수기 버튼을 수 없이 누르는 너가 너무 귀여웠고, 요리하고 있을 때 요리 도구들을 모조리 꺼내서 부엌을 엉망으로 만드는 순간에도 너를 사랑했어. 너를 사랑한 순간들이 너무 많아서 이 글을 적다가는 며칠이 지나도 다 적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드네.
엄마가 더 늦기 전에 너에 대한 기록을 시작했다는 것이 너무나 다행이다라는 생각이 든다. 이렇게 적지 않으면 엄마의 기억 저편에 그냥 묻어져 있었을테니까.
엄마는 너를 사랑하며, 엄마로 한 명의 인간으로 성장할 수 있었어. 너를 너무 사랑했기 때문에 좋은 엄마가 되고 싶었고, 그렇게 하기 위해서 무엇을 해야하는지 무엇을 하지 말아야 하는지, 무엇을 참아야 하는지 늘 고민했었어. 너를 사랑하는 마음이 엄마를 강하게 만들었어. 엄마는 너에게 잔잔한 바다같은 사람이 되고 싶었다. 파도치며 휘몰아치는 폭풍우를 경험해도 어느 순간 다시 잔잔해지는 모든 걸 품을 수 있는 그런 엄마가 되고 싶었고, 앞으로도 그러고 싶구나.
매일 아침 자고 일어나서 방에서 보는 널 보는 순간도 너를 사랑한다.
사랑하는 아들 잘 커줘서 고맙다.
사랑으로 존재해줘서 고맙다.
너를 사랑하는 모든 순간이 고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