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를 기록하다
세상의 모든 아빠들을 위한 기록
지금의, 과거의, 앞으로의
아빠를 그리워할 사람들을 위한 기록
아빠와 정말 무수히 많은 식당을 다녔다. 늘 맛있고 좋은 곳에 데려가 주셨던 아빠. 그날도 아빠와 함께 자주 가던 식당에 간 날이었다. 자주 갔던 곳이었기 때문에 익숙한 곳이었고, 늘 먹던 음식이 있었다. 내가 꽤 좋아했기도 했던 식당이라 나는 그 식당에 가면 꼭 먹는 게 있었다. 메인 음식 외에 서비스로 주는 음식이었다. 말하지 않으면 주지 않기 때문에 꼭 그 식당에 가면 아빠에게 이야기를 해서 서비스로 주는 음식을 먹곤했다.
그날은 아빠가 아니라 내가 직접 이야기를 했다. 내가 꽤 좋아했던 음식이라 나는 식당에서 주문을 받는 분께 그것도 달라고 이야기를 드렸다. 곧 나오겠지 하고 기다리는데 일단 메인 음식이 먼저 나왔다. 평상시에 갔을 때는 메인 음식이 나오기 전에 나오는 음식이었다. 메인 음식을 먹고 있는데 내가 이야기 했던 추가로 먹고 싶었던 음식이 나오지 않았다. 난 음식을 먹다가 다시 직원을 불러 아까 이야기했었는데 아직 안나왔다고 다시 이야기를 했다. 그리고 또 시간이 흘렀다. 좀처럼 이야기 한 음식을 가져다 줄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메인으로 나왔던 음식은 다 먹어가고 있는 시간이었다. 왜 내가 말한 음식은 나오지 않을까? 추가로 돈을 내면서 먹는 메뉴는 아니고 서비스 메뉴이긴 했지만 이렇게 가져다 주지 않는 것이 의아했다. 나는 다시 한 번 직원을 불러 이야기를 하려고 했다.
그런데 아빠는 나에게 이제 그만하라고 이야기를 하셨다. 난 갑자기 왜 그러냐고, 가져다 주지 않는 사람이 잘못한 것인데 왜 이야기를 하면 안되냐고 아빠에게 되물었다. 아빠는 그냥 이제 다 먹었으니 일어나자고 못 마땅하다는 듯이 말씀하셨다. 난 잘못한 것도 없는데 혼나는 상황이 이해가 되지 않았고, 맛있게 음식을 먹다가 분위기가 그렇게 되니 좀 민망하기도 했었다.
결국 아빠의 갑작스럽게 냉랭해진 태도 때문에 먹고 싶었던 서비스 음식을 다시 달라고 이야기도 못했고, 서둘러 밥을 먹다가 식당을 나오게 되었다. 그리고 나서 나는 아빠에게 꾸지람을 들었다.
아빠의 말은 이랬다.
바쁘게 일하는 사람들에게 굳이 꼭 불러서 니가 원하는 것을 줄 때까지 이야기를 해야겠냐고,
그냥 바쁜가 하고 넘어갈 수도 있어야지. 매번 와서 먹는 걸 이번에도 굳이 먹어야겠냐고,
왜 그렇게 타인을 배려하지 않냐고
하며 화를 내기까지 하셨다.
아빠가 장사를 오래했기 때문에 컴플레인 하는 손님들에 대해서 타인을 배려하지 않고 자기 주장만 하는 손님으로 생각을 했었던 듯 싶다. 앞에서는 손님이니까 네네 하면서 어쩔 수 없이 들어주고 정리를 하지만 속으로는 마음이 많이 상할 수 있다는 것이다. 아빠는 나에게 조근조근 설명을 해 주셨는데 난 솔직히 그 당시에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내가 먹고 싶은 걸 이야기 했고, 가져다 주겠다고 잊어버린 사람이 잘못이지, 아빠는 왜 나한테 뭐라고 하냐고 도리어 아빠의 이야기를 받아들이기 보다는 나도 버럭 화를 내며 내 주장만 해버렸다. 그 당시에 그 일때문에 아빠랑 의견이 좁혀지지 않아서 며칠동안 아빠랑 말을 안하고 지냈던 것으로 기억한다.
요즘 말로 하면 아빠는 나에게 영원한 꼰대였던 듯 하다. 사회에서라면 그냥 그 정도 어른이 이야기 하는 것에 그냥 넘어갈만도 한데, 난 아빠니까 나한테는 제일 쉬운 사람이니까 아빠의 생각에 바득바득 내 생각이 더 맞다고 주장하고, 아빠를 답답한 사람으로 생각하고 행동했다. 나의 20대는 늘 그랬던 듯 하다. 나의 생각에 휩쌓여 타인의 생각의 깊이와 넓이를 이해하지 못한 채로 살았던 그 때. 돌아보면 그때의 내가 더 꼰대였지 않나 하는 생각도 든다.
아빠는 항상 어떤 상황에서든 그냥 사람과의 관계에서 내가 손해를 보는 쪽을 택했다. 자신의 것을 주장하고 자기 것만 챙기는 사람들이 많은 세상에서 늘 타인을 먼저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눈살 찌푸리고 누군가에게 컴플레인 하는 것보다는 그냥 그럴 수도 있지 하고 넘기는 그런 사람이었다. 공정하지 않은 것에 대해 내가 따지고 들면, 그렇게 너무 날세우고 살지 말라고 좋은게 좋은 거다 했던 그런 분이었다.
아빠는 내가 사람들과 어울려 살고, 나와 다른 역할을 하는 사람들의 입장에서도 생각할 수 있는 그런 사람이었으면 하는 생각을 하셨던 모양이다. 지금의 내가 나의 아들에게 아들이 타인을 좀 더 생각하고 배려하는 사람이 되었으면 했던 것처럼 말이다. 그 때 내가 먹고 싶은 무언갈 하나 더 먹기 위해서 나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타인에게 따지는 것이 아빠 눈에는 안타깝기도 하고, 우리 딸이 왜 저러지? 우리 딸을 타인을 배려하는 사람인 줄 알았는데 아니었네 하는 생각에 실망하여 나에게 꾸지람을 했던 것 같다.
그때의 나는 굉장히 이기적이고 나밖에 몰랐고, 아빠에게 혼나서 며칠동안 말도 제대로 안 한 속이 좁은 아이였는데... 살아가면서 그 때 아빠가 해줬던 그냥 넘어가도 되지. 하는 그 말이 참 내 인생의 구비구비에 떠오르고 생각이 났다. 그래 이런 건 그냥 넘어가도 되지. 그럴 수도 있지. 너무 박하게 그러지 말자. 특히 서비스업에 종사하는 분들에게 좀 더 예의 바르게 감사를 표시하고 하는 그런 어른으로 나는 자라났다.
나는 아직도 아빠보다는 타인에 대한 배려심이 부족하다. 아빠만큼 내가 하기는 힘들 것 같다. 하지만 아빠를 따라 함께 더불어 가는 세상에서 내가 타인과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배웠다. 그리고 나도 나의 자식에게 아이가 그런 사람이 되길 바라는 만큼 시간이 흘러버렸다.
식당에서 아빠가 나에게 해주었던 이야기가 정말 많은 시간이 지나고 나에게 다시 걸어들어왔다. 그리고 이렇게 기억해 본다. 그때의 꾸지람은 나를 사람 만드는 약이 되는 말이었다. 그 깊은 의미를 이해하는데 오래걸렸지만 이렇게라도 기억해본다.
어울려 사는 세상, 박하게 살지 말자.
아빠가 세상을 살아가는 법을 그렇게 어깨너머로 배운 시간들을 이렇게 기억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