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를 기록하다
세상의 모든 아빠들을 위한 기록
지금의, 과거의, 앞으로의
아빠를 그리워할 사람들을 위한 기록
10년이 넘는 시간동안 왕복 2시간 거리를 출퇴근했었던 아빠가 생각난다. 5살이 될 무렵 우리집은 여수에서 순천으로 이사를 했다. 1980-90년대 여수와 순천은 자동차로 1시간 가량 운전을 해야 갈 수 있는 거리였다. 순천에서 장사를 시작했던 아빠는 돈을 모아 여수에서도 가게를 열게 되었다. 초등학교, 중학교 친구들과 떨어지기 싫었던 우리 남매는 다시 여수로 이사가자고 했던 아빠의 제안에 "싫어요"라고 말했고, 그때부터 아빠의 출퇴근이 시작되었다. 아빠의 가게는 자정이 되어서야 일이 끝났고, 아빠는 늘 새벽 1-2시에 자차로 운전해서 집에오는 일상을 10여년이 넘게 반복하셨다.
정말 단 한번도 아빠가 힘들거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당연히 아빠는 힘든 내색을 하지 않았다.
나도 결혼을 하고 서울에서 떨어진 경기도권에 살면서 출퇴근을 시작하면서 알았다. 힘들다 한 마디 하지 않았던 출퇴근의 피곤함의 무게를 말이다. 지하철을 타고 버스를 타고 왕복 2시간을 거리에 쏟아 붓는 일이 얼마나 쉽지 않은 일인지 그제야 알았다. 서울, 경기도권에서는 왕복 2시간 출퇴근이 너무도 당연하지만(물론 그래도 힘든 건 마찬가지다) 내가 살던 지방에서 그 시절에 정말 흔치 않은 일이었다. 그런데도 아빠는 우리를 위해 그렇게 해주었다.
그것도 직접 운전을 해야했던 출퇴근.
일이 끝나고 마음 편하게 술을 마시며 취하기도 어려우셨겠구나라는 생각까지 미치자 머리가 멍해진다.
매일 같이 이어지는 출퇴근 길에 아빠는 운전을 하면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아빠는 차 안에서 어떤 음악을 들었을까? 집에 오는 길에 졸리는 순간에는 어떻게 했을까? 우리에게 이사가면 어떻겠냐고 다시 말해야 할까 몇번을 고민하셨을까? 자신의 출퇴근이 언제까지 계속될지 상상해보셨을까? 일이 끝나고 집으로 가지 않고 가까운 곳에 잠을 자고 갈까? 라고 몇번을 생각하셨을까?
아빠의 출퇴근을 떠올리며 여러 물음들을 던져본다.
수 많은 날동안 내 기억 속에 아빠의 외박은 거의 없었다. 아침에 일어나면 늘 아빠가 계셨다. 집에 오시면 거의 1-2시가 되는 시간이었을테니 내가 학교가는 시간에는 거의 잠을 자고 있었다.
참 어렸던 나는, 그런 아빠를 깨우기도 하고 아침마다 자고 있다고 푸념을 하기도 했다.
같은 학교 다니던 친구는 아빠랑 새벽마다 운동을 하는 모습을 보고 우리 아빠는 왜 그렇게 못할까?라고
부러워하기까지 했다.
참 어렸다. 아빠를 기록하기 위해 글을 쓰다보니 정말 참 어렸다.
아빠 혼자의 희생으로 인해 난 단 한 번의 전학도 하지 않고 학창시절을 마칠 수가 있었구나! 새삼 감사하다.아빠가 존재했던 모든 순간은 다 가족을 위한 시간이었던 것이라는 것을 참 늦게도 깨달았다.
늘상 일어나는 출퇴근, 누군가의 삶의 당연한 모습 속에
노곤함, 어려움, 힘듦, 성실함, 해냄, 계속함 이라는 많은 단어들이 숨어있었다는 것을 발견해본다.
아빠를 기록하는 일은 가슴 뭉클하기도 하면서 아프기도 하면서 짠하기도 한 시간이다.
오늘도 출퇴근하는 거리 속에 수 많은 사람들이 졸린 눈을 비비고 일터로 향하는 발걸음을 느껴본다.
세상 모든 발걸음이 귀해지는 순간이다. 오늘도 시작되는 누군가의 아빠들의 하루를 조용히 응원해본다.
우리가 집을 나서는 아빠에게 안녕히 다녀오세요,
무사히 돌아오신 아빠에게 안녕히 다녀오셨어라고 말해야 하는 당연하지만 꼭 해야할 그 일을 잊지 않기를 바래본다. 적막하고 아무도 없는 공간에 들어가며 기분 좋은 사람은 없다. 심지어 집에 사람이 있는데도 왔는지 없는지 관심조차 없는 그런 상황에서의 퇴근길이라면 허탈하지 않을까?
아빠, 진짜 고마워요.
매일 말하지 않아도 오고가는 인사로 그 마음을 대신해보자.
어쩌면 우리가 매일 다시 만날 수 있다는 건 기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