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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기바라봄 Jan 29. 2024

거짓말1

아빠를 기록하다

세상의 모든 아빠들을 위한 기록

지금의, 과거의, 앞으로의 

아빠를 그리워할 사람들을 위한 기록


 그날따라 조용한 아침이었다. 엄마는 합창단 연습으로, 동생은 친구들과의 약속으로 일찍 외출을 했던 어느 방학날로 기억한다. 아침 햇살에 눈이 떠진 나는 침대 위에서 뒹굴하다 조용히 방 밖으로 나갔다. 아빠는 아직 자고 있었다. 엄마가 챙겨 놓으신 기본 반찬들을 챙기고 아빠와 아침을 먹을 준비를 했다. 동생과 엄마가 없는 조용한 아침이 조금 낯설기도 했다. 시계를 보니 아직 오전 9시다. 아빠는 보통 10시쯤 기상을 하신다. 보통 자정이 훌쩍 넘어 집에 들어오시기 때문이다. 조금만 더 주무시게 놔둬야 하나? 잠시 고민에 빠졌다. 


 아빠를 깨워야 겠다라고 마음을 먹고, 안방으로 향했다. 안방 문 옆 벽면에는 엄마가 아끼는 백조 모양 도자기 인형이 놓여져 있는 선반이 있었다. 선반 위에는 그 외에도 몇 가지 장식품과 저금통 등이 자리하고 있었다. 잠시 그 앞에 서서 백조 모양 도자기 세트를 보며 새삼 이쁘다 생각해봤다. 

 선반 위 물건들을 만지작 만지작 하다가 돌아서는 순간이었다. 뭔가 둔탁한 소리가 나서 돌아보니 백조 모양 도자기 인형이 바닥에 깨어진채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앗뿔사, 어쩌다 떨어뜨린걸까? 난감했다. 다행히 파편이 많이 떨어지지 않아서 다치거나 할 걱정은 없었다.

평소 물건을 자주 잃어버리고 떨어뜨리는 칠칠치 못한 나는, 얼마전 엄마를 도와드리다 유리 그릇을 깨뜨렸던 일이 떠올랐다. 어쩌지 이번에도 혼나겠네라는 생각이 먼저 떠올랐다. 어떻게 움직여야 파편들을 피해 잘 치울 수 있을까? 생각하며 허둥지둥 움직이고 있었다.


달.칵.


 그 때 아빠가 방문을 열고 나오셨다. 방문 앞에서 이리 움직이고 있으니 사람이 잠에서 깨지 않는 것이 이상한 일이었다. 나는 놀란 눈으로 아빠를 바라봤다. 아빠는 순간 내 얼굴과 깨어진 도자기 인형을 번갈아 가며 쳐다봤다. 뭔가 내 잘못이 아니라는 걸 말하고 싶었을까? 뭔가 말을 했던 것 같기도 하고 솔직히 내가 무슨 말을 했는지 기억이 안난다(벌써 30년 전 이야기이다). 그런데 그리 많은 시간이 지났는데도 아빠가 했던 말이 떠오른다.


"아빠가 깨뜨린걸로 하자"


 아빠는 나의 잘못을 자신의 일로 하겠다고 이야기 했다. 그 시절 어린 마음에 엄마에게 또 혼나겠네라고 걱정했었던 나의 마음을 아빠가 알아주셔서 였을까? 나는 그 장면이 참 오랫동안 반복해서 생각이 났다. 아빠가 나에게 참 잘해주셨던게 많은데 내 어린시절을 통틀어 가장 고마웠던 순간이었기도 하다. 


 어릴적 나의 사소했던 많은 거짓말들은 모두 나를 위한 것이었다. 어려움을 피하기 위한 부모님의 눈을 속이기 위한 거짓말을 했었다. 지금 아이를 키우며 느끼는 것은 아이의 눈동자만 봐도 얼굴 표정만 봐도 거짓말인지 아닌지 알겠다는 점이다. 아빠는 나의 무수히 많은 거짓말들을 모른척 해줬던 걸까? 하는 생각도 든다. 

 아빠의 거짓말은 나를 안심시켰다. 나는 그날을 참 햇살 따스했던 날로 기억한다. 


내 마음이 참 따뜻했었나보다. 우리는 누군가의 지적이나 부정적인 말보다는 내 편에 서서 나를 지지하는 단 한 마디를 늘 기다린다. 아빠는 나에게 그런 존재였다. 


 늘상 내편이었던 아빠, 늘 믿음과 지지를 보내주셨던, 나의 잘못을 살짝 덮어주기도 하셨던 아빠. 내가 자라면서 배운 건 타인의 잘못에 대응하는 아빠의 모습인 것 같다. 아빠는 세상에 이런 사람도 있고, 저런 사람도 있다고 참 많이도 이야기 하셨다. 무언가 부당한 대우를 당했을 때 자주 화내거나 그러시기 보다는 그냥 그럴 수도 있지라고 넘기는 일이 많았다. 그런 아빠를 보고 자랐다.  내가 성인이 되어 타인의 잘못이나 어쩔 수 없는 상황에 너그러울 수 있었던 건 아빠 덕분인 듯 하다. 상황을 곱씹거나 누군가를 탓하지 않고 살아가는 마음의 근원은 아빠였던 것 같다. 


 우리는 누구나 잘못을 한다. 완벽하게 살아가는 사람은 거의 없다. 하지만 약간만 상황과 상대에 너그러워지면 그냥 그럴 수 있는 별일 아닌 일이 되기도 한다. 아빠의 거짓말이 나를 더 괜찮은 사람으로 성장시켰다. 

 

 거짓말같은 아빠의 사랑에 나는 오늘도 따뜻한 하루를 시작할 수 있는 사람으로 성장했구나.

거짓말은 나쁘기만 한게 아니다. 아빠의 거짓말은 사랑 그 자체였다.


사진: Unsplashsebastiaan st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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