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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기바라봄 Feb 08. 2024

목욕 가는 날

아빠를 기록하다

세상의 모든 아빠들을 위한 기록

지금의, 과거의, 앞으로의 

아빠를 그리워할 사람들을 위한 기록


 일주일에 한 번 일요일 아침이면 우리 가족은 목욕탕에 갔다. 80-90년대에 집집마다 샤워를 할 수 있는 시설이 잘 안되어 있었던 시절, 목욕탕을 가는 것은 이벤트가 아닌 습관같은 일이었다. 그 당시 목욕탕은 동네마다 크기도 참 다양했던 걸로 기억한다. 5분 거리에 갈 수 있는 작은 목욕탕은 동네 슈퍼 가는 것처럼 자주 가는 길목에 위치하고 있었고, 그러다가 큰 목욕탕들이 조금씩 생기기 시작했다. 마치 대형 슈퍼마켓처럼 말이다. 


 우리집은 아들 하나, 딸 하나 집이라 아빠랑 남동생, 엄마랑 나 이렇게 팀을 이뤄 목욕을 갔다. 큰 목욕탕에는 냉탕과 온탕이 크게 잘 되어 있고, 사우나 시설이 다양해서 주말 아침이면 나들이 가듯 목욕탕에 갔다. 늘 가게가 바빴던 아빠는 주말 아침 다 같이 목욕 가는 시간을 참 좋아하셨던 듯 싶다. 


 목욕이 끝나면, 점심은 외식이었다. 자주 갔던 목욕탕 건물은 다른 층에서 식당도 운영하고 있어서 그곳을 자주 갔었다. 외식을 가면 늘 떠오르는 장면, 메뉴를 몇개 시키느냐를 놓고 아빠 엄마는 투닥 거리기 시작했다. 넉넉히 시키고 싶은 아빠와 많이 시키면 남는다는 엄마측의 의견이 팽팽하게 맞선다. 오랜만에 외식나와서 맛있는거 먹자고 앉았는데 메뉴를 시킬때부터 그런 분위기라니 어린 나는 그런 모습이 반가울리 없었다. 진짜 어릴 때라 싸해진 분위기에서 뭐라 말도 못했던 기억이 난다. 


 목욕 가는 날은 가족 구성원 모두가 신났던 날이면서, 또 서로 더 위하며 싸우기도 했던 그런 날이었다. 원래 아이들은 엄마편이지 않나? 엄마가 다 먹지 못한다고 조금만 시키자고 하는데 더 시키자고 하는 아빠를 난 이해할 수 없었다. 실제로 음식은 남기기 일쑤였으니까. 

  

 나는 아빠 마음 이해력이 낮았다. 오랜만에 가족끼리 외식할 때 넉넉히 먹이고 싶었던 아빠의 그 마음을 말이다. 그냥 왜 밥 먹으러 와서 화를 낼까? 하는 생각만 했었다. 아빠는 늘 우리 가족들에게 참 후했다. 자신은 어렵게 자랐지만 우리에겐 그런 경험을 하게 하고 싶지 않으셨던 것 같다. 그래서 잠을 줄여가며 일하셨고, 참 성실히 그렇게 살아가셨다. 외식 가서 원하는 만큼 넉넉하게 시켜 가족들과 함께 먹는 것이 그 시절 아빠의 작은 바램이었고, 가족을 향한 사랑의 표현이었을 텐데 그 땐 그걸 알지 못했다. 


 아빠 어릴 적에는 가족과 외식하는 것 조차 쉽지 않았겠구나. 메뉴를 고르고, 많이 시키는 것은 더 더욱 일어나기 어려운 일이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아빠의 과거를 생각하니, 어린 아빠를 생각하니 마음이 몰캉해진다. 목욕하는 날은 다 같이 외식하는 날, 나에겐 습관같은 일이 아빠에게는 설레이는 날이었을 수도 있겠다.


 한 번은 아빠편을 들어줄걸 하는 늦은 후회도 밀려온다. 아빠편을 제대로 들어준 일이 기억이 안 난다. 어려서는 몰랐고 자라면서는 내 생각이 옳다고 주장만 하며, 내 마음을 몰라준다 푸념만 했다. 나에게 가장 호의적인 사람의 반대편에 서는 일을 참 많이도 했구나. 지금부터 내가 쓰는 글은 아빠를 기록하는 글이자 나의 반성문이구나 라는 생각이 든다. 


 언제나 내 편이었던 아빠.

언제나 맞섰던 딸의 이야기는 이제 시작이다. 나의 반성문은 계속된다.

나이들고 가정을 이루고 알게 되었다. 아빠 카드로 밥 먹을 때 가장 행복했었던 시절이라는 것을, 셀 수 없이 많은 외식비 중 난 얼마나 살아생전에 갚을 수 있을까 싶다. 받으려고 주신 건 아니겠지만 뵐 때마다 살아계실 때 자주 넉넉하게 사 드려야 겠다 다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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