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를 기록하다
세상의 모든 아빠들을 위한 기록
지금의, 과거의, 앞으로의
아빠를 그리워할 사람들을 위한 기록
아빠는 십남매 중 여덟번째로 태어났다. 누나, 형 7명에 동생 2명이 아빠의 형제들이었다. 우리 할머니는 아들 다섯, 딸 다섯을 낳으셨는데 아빠는 아들 중에서는 네번째였다. 신문과 방송에서 만나는 베이비붐 세대를 증명이라도 하듯 아빠의 가족은 많았다. 아들이 엄마를 사랑하는 건 너무도 당연한 일이기도 하지만 아빠는 참 효자였다. 아빠와 엄마는 결혼해서 여수에서 5년 정도 살다가 할머니가 살고 계신 순천으로 이사를 했다. 아빠의 가게는 할머니 댁에서 뛰어가면 5분 거리에 자리를 잡았다. 할아버지는 중풍으로 누워계시다 돌아가신지 오래였다. 할머니는 혼자서 작은 주택에 살고 계셨다. 혼자 계신 홀어머니를 가까이서 보살펴드리고 싶었던 걸까? 우리는 언제든 할머니 댁에 갈 수 있는 곳에서 살게 되었다.
가까이 사는데도 할머니가 걱정이 되었던 아빠는 내가 일곱살이 되던 해에, 할머니 댁에 가서 자고 오는게 어떻겠냐고 이야기를 하셨던 모양이다. 나는 일곱살 무렵부터 열한살에 우리집이 이사 가기 전까지 5년간 매일 할머니 댁에 가서 할머니 옆에서 잠을 잤다. 나는 매일 저녁에 되면 할머니 집으로 향했다.
나는 아빠만큼 할머니가 좋았다. 할머니 집의 뜨끈했던 아랫목, 우리 손녀 왔구나 하셨던 목소리, 할머니 냄새, 할머니집 옥상에서 밤하늘을 보면서 들었던 옛날 이야기, 새벽같이 일어나 늘 뜨개질을 하시던 할머니 모습, 바늘에 실 끼워달라고 요청하시던 모습, 할머니랑 다녔던 시장 여기저기까지, 오래되었는데 아직 생생하다. 나는 자연스럽게 할머니를 사랑했다. 아니 난 할머니의 사랑까지 듬뿍 받았다.
아빠가 할머니 댁 근처에 살지 않았더라면, 나에게 가서 자는게 어떻겠냐고 제안하지 않았더라면 나는 할머니와 어떤 추억도 쌓지 못했을거다. 한 아이가 부모외에 온전히 사랑받을 수 있는 유일한 대상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조부모일 것이다. 아빠는 나에게 할머니와의 시간을 선물해 주었다. 솔직히 아빠가 할머니를 얼마나 사랑했는지 걱정했는지 그 당시에는 단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다. 어슴푸레 예상할 뿐이다.
아이는 부모를 보고 자란다고 했던가? 나와 동생은 초등학교 1,2학년 무렵 유리병을 슈퍼에 되판 돈을 모았고, 50원씩 100원씩 모아 목돈을 마련해서 할머니 보약을 해드리는 일까지 하게 되었다. 친척들 사이에서는 아이들이 돈을 모아 할머니 보약을 해줬다고 기특하다고 소문이 났고, 우리는 칭찬을 받으며 참 으쓱으쓱했었다. 돌아보면 어린 나이에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건 아빠 덕분이 아닐까 싶다. 아빠의 사랑은 여러모로 선순환의 시작이자 끝이었다.
아빠는 나를 사랑했고, 나에게 표현했다.
할머니는 아빠 대신, 아빠 보다 더? 나를 사랑했고 아껴주셨다.
사랑은 그렇게 돌고 돌았다.
아빠가 사랑이 많았던 건 할머니한테 배웠겠구나 생각하다 나는 아빠를 통해 또 사랑을 느꼈구나! 돌고 돌아 그 사랑이 나한테 왔구나.
맞다. 사랑은 배우는게 아니라 느끼는 거구나. 그 충만한 느낌이 나를 내내 성장시켰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정말 따끈해진다. 할머니의 뜨끈한 아랫목이 아직도 생각나는 밤이다. 엄마를 사랑했던 아들의 마음을 잠시 생각해본다. 할머니에서 아빠 그리고 나, 이제는 내가 나의 아이에게 사랑을 전해본다.
사랑은 이렇게 영원히, 지금도 존재하고 있다.
아빠 사랑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