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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기바라봄 Feb 14. 2024

아빠의 꿈1

아빠를 기록하다

세상의 모든 아빠들을 위한 기록

지금의, 과거의, 앞으로의 

아빠를 그리워할 사람들을 위한 기록


 나도 꿈이 있었을 무렵, 아빠의 꿈에 대해 살짝 들은 적이 있다. 아빠의 꿈은 야구선수였다고 한다. 아빠는 참 운동을 잘하셨다. 배구, 축구 등 기본적인 구기 종목과 더불어 개인적 역량이 필요한 달리기, 스키 등등까지 말이다. 1950년대 생인 아빠가 커가던 시절에는 지금은 참 흔한 축구클럽 같은 건 당연히 없었다. 하지만 아빠는 배우지 않았는데도 운동을 배우는 지금의 우리보다 잘했다. 그래서 운동장에서 아빠는 더 멋졌다. 아빠는 운동도 잘했지만 승부욕이 남달랐다. 승부욕 때문에 운동을 잘했을지도 모른다. 


 아빠에게도 꿈이 있었다. 하지만 꿈은 꿈일뿐 역시나 이뤄지지 않았다. 몇살때 처음 아빠가 꿈이 생겼는지는 모르겠다. 아빠의 말에 의하면 야구 선수가 되고 싶다고 할머니에게 이야기 했는데 할머니는 서당에 보내셨다고 한다. 아빠의 둘째형이 이미 국가대표 사이클 선수를 하고 있었던 집안에 또 운동 선수라니 할머니는 감당이 안되셨을거다. 그러고 보면 아빠네 집안은 운동을 잘하는 DNA를 가지고 태어난 듯 하다.


 아빠의 꿈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야구를 더 할 수 있게가 아니라 야구 생각을 못하도록 서당에 보내졌다. 아빠는 거기에서 한문에 능통해서 돌아오신 것 같다. 옛날 신문들이 한문 반 한글 반 섞여 있어 곧잘 한문을 잘 읽는 분들이 있기도 했지만 아빠는 유독 한문을 잘 읽었다. 아빠는 나에게는 한문 사전같은 사람이었다. 아빠가 한문을 잘 읽게 된 스토리에는 아빠의 꿈꾸웠던, 아니 꿈을 접어야했던 순간이 있었다. 꿈을 이야기 했을 때 꿈과 다른 방향을 안내하는 자신의 엄마 앞에서 아빠는 어떤 표정을 지었을까?



 승부욕이 강하고, 자신은 잘 할 것 같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이야기 했을텐데... 그리고 이미 집에 운동선수가 있었기 때문에 더 자신도 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하고 이야기 하지 않았을까? 그런데 결과는 서당행이었다. 아빠는 그렇게 자신이 꿈을 접어야 했던 순간을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그리고 군대를 다녀온 후 바로 생계에 뛰어드셨다.


 난 어려서부터 꿈이 없이는 못 살 것처럼 인생을 살아왔다. 하고 싶은게 없는 삶은 뭔가 재미없고 의미없는 것 같아 끊임없이 무엇을 해야할까? 무엇을 하고 싶은가에 대해 고민하고 목표점을 찾으면 끝까지 매달려보려고 노력했다. 그리고 수 없이 도전하고 실패했다. 그리고 지금 내가 꿈꾸는 삶과 똑같진 않지만 엇비슷하게 살아가고 있다. 그 와중에 알게된 것이 있다.


 꿈이라는 건 일단 부모가 건강하고, 자녀의 꿈을 지지했을 때 그나마 다가서기에 조금은 더 가까울 수 있다는 것을 말이다. 물론 모두가 반대하지만 꿈을 이룬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부모가 건강하지 않거나 경제적으로 어려운데 자신의 꿈만 쫓을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난 운이 좋게도 두 가지가 다 해당되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아빠는 아니었다. 


 어머니 혼자 집안 살림을 챙기고 있고 아버지는 병들어 누워계신 상황에서 아빠는 자신의 꿈을 계속 주장할 수 없었을 거다. 내가 보지 못한 시간에 해보겠다고 소리친 반항의 시간들도 분명히 있을 것이다. 


 1990년대 박찬호 선수의 메이저리그 맹활약을 보면서 아빠는 마치 자신이 박찬호 인 것 마냥 열광하셨다. 여수와 순천을 오가는 출퇴근 길에 혹시라도 경기가 있을까봐 노심초사 하시기도 했다. 박찬호가 승리하면 자신의 삶이 승리한 것 처럼 기뻐하셨다. 그 당시 10대였던 나는 메이저리그가 뭔지도 모르는 그런 여자 아이였다. 매번 전화로 경기 결과가 어떻게 되었냐고 묻는 아빠에게 박찬호가 나라를 구했냐고 타박하기도 했다. 


 아빠에게 박찬호는 자신의 꿈을 대신 이룬 것 같은 사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이 글을 쓰면서 들었다. 나는 아빠를 기록하며 아빠의 지난 시간들을 찬찬히 들여다 보고 있다. 글을 쓰다 혼자 웃음 지었다 울컥했다 하는데 오늘은 평소보다 많이 짠한 그 시절의 아빠, 나의 아빠가 아니었던 한 아이가 떠오른다.


 나처럼 꿈에 대한 열망이 강했던 한 소년이 있었다. 그 소년은 야구 대신 한자를 배우게 되었고, 걸어다니는 한자 사전이 되었고, 20대부터 생계를 위에 뛰기 시작했다. 그리고 가정을 이룬다. 그 가정 안에서 꿈에 열망하는 내가 태어난다. 아빠는 내가 20대 후반이 될 때까지 건강했고, 나의 꿈을 지지해줬다. 그래서 나는 계속 꿈꿀 수 있었다. 내가 꿈꿀 수 있었던 원천, 나의 꿈 뒤에는 아빠가 있었다. 


 언젠가 메이저리그 LA다저스 구장에 가서 아빠에게 경기를 보여주고 싶다. 아니, 가깝게 아빠가 사랑하는 우리나라 기아 타이거즈 구장에라도 꼭 모셔가야겠다. 


 아빠는 지금도 겨울을 제외하고 봄부터 가을까지 야구를 시청한다. 아빠가 장애인이 되신 후 아빠가 사랑하는 스포츠인 야구가 4계절 중 3개의 계절동안 하는 사실이 너무도 다행이고 고마웠다. 야구선수가 되고 싶었던 아이는 야구를 사랑하는 팬으로 남아있다. 어쩌면 매일 야구를 보면서 그 시절의 자신을 잠시 꿈꿔보는 것이 아빠의 최고의 꿈일지도 모르겠다.


 아빠도 꿈이 있었다. 아니 아직 있을지도 모른다. 오늘 하루 가만히 나의 꿈이 아닌 아빠의 꿈을 들여다본다. 아빠의 꿈을 나도 사랑해본다. 그 시절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 조차, 시도 조차 못해보았을 아빠를 안아주고 싶다. 


토닥.토닥.


Pixabay로부터 입수된 stanbalik님의 이미지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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