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를 기록하다
세상의 모든 아빠들을 위한 기록
지금의, 과거의, 앞으로의
아빠를 그리워할 사람들을 위한 기록
중학교 무렵이었다. 시험기간이었다. 하루 이틀 뒤가 시험이었는데 제사에 아빠는 꼭 와야 한다고 이야기를 하셨다. 제사를 지내는 할머니집이 집에서 가깝기도 했고, 너무나 당연히 제사에 와야 한다고 이야기 하는 아빠의 말을 뿌리칠 수가 없어서 제사 참석을 위해 할머니 집에 들렀다.
우리 집을 제외하고 나와 비슷한 또래는 아무도 제사를 지내러 오지 않았다.
지역사회 중고등학교 다 보니 시험기간이 다 비슷했고 다들 시험 준비를 하느라 오지 않았던 거다.
나는 속으로 툴툴 대기 시작했다. 도대체 우리 아빠는 왜 이런걸 중요하게 생각하는 걸까?
난 돌아가신 할아버지를 사진으로 밖에 보지 못했다. 할아버지와 어떤 추억도 없다. 제삿날이면 각종 음식을 하느라 엄마가 부엌에서 일만하는 것도 마음에 안 든다. 음식은 뭘 그렇게 많이도 하는지, 그냥 그날만 하고 먹고 치우면 될껄. 아빠네 가족이 10남매인데 그 10남매의 가족들이 먹을 것까지 하느라 할머니집 마루에는 음식이 가득하다. 제사를 지내고 나서 그 음식을 몇날 몇일 계속 먹는 것도 너무나 싫었다.
나에게 제사는 어떤 의미도 주지 못했다.
좋았던 것 중 하나를 뽑으라면 많은 식구들이 모이고 사촌들이 모여서 같이 놀기도 하고 이야기도 하면서
시간을 보냈다는 것이다. 평상시 만나지 못하는 사람들을 만나니 반가운 건 있었다.
그런데 나와 비슷한 또래가 많다 보니 다들 시험기간이라고 제사에 오지 않았다.
나의 유일한 기쁨이었던 반가운 사람들을 만난다는 점까지 없었던 그런 제삿날이었다.
아빠가 원망스럽기까지 했다.
아빠는 이렇게 이야기 했다.
"세상에 공부보다 중요한게 많다고, 아빠는 가족의 행사를 중요하게 생각한다고,
공부 잘하는 것이 중요한게 아니라고..."
아빠의 그런 이야기가 중학생 밖에 되지 않았던 나에게는 그냥 도덕 책에 나오는 얘기보다 더 지루한
그냥 그런 이야기에 불과했던 것이다. 나에게는 제사가 전혀 중요하지 않았으니까,
나에겐 중요하지 않은 것을
내가 아빠의 딸이라는 이유로 지켜야 한다는 점이 불합리 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난 그냥 그 자리에서는 시간을 다 채우고 일어났다. 그런 일은 나의 학창 시절 내내
반복되었다. 제사는 어쩌면 하나의 상징이었을지도 모른다. 아빠는 사람에게 있어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나의 어린시절 여러 순간이 가르쳐주려고 했던 걸까?
하지만 나는 그땐 그게 왜 중요한지?
전혀 몰랐다. 그렇게 커버렸다.
아빠의 불합리하고 도덕책 같은 생각에 끊임없이 저항하고 반항하면서
나는 자랐다.
그런 말이 있지 않은가
자식은 부모가 하는 말로 세상을 배우는 것이 아닐
부모의 등을 보며 자란다고
어깨너머로 본 아빠의 행동과 말들을 나는 자연스럽게 보고 배웠다.
어쩌면 그런 아빠 밑에서 컸기 때문에
내가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달라졌는지도 모르겠다.
무언가 나의 단기적인 이익만을 위해서 행동하고 관계 맺기 보다는
지금까지 나와 그 사람의 히스토리 안에서 내가 어떻게 행동하면 좋을까?
생각한다.
"혼자만 좋기 보다는 타인과 함께 하면서 좋은 삶"
이것이 바로 내 인생의 다양한 순간에서 선택의 기준이었다.
우리 인생에서는 중요한 순간이 너무 많다. 선택해야 하는 두 갈래길도 무수히 많이 등장한다.
그럴때마다 어떤 기준으로 살아야 하는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라는 답을
당장의 나의 이익을 위해서 살아가기 보다는 함께 더불어 살아가는 세상이 더 좋구나라는 부분을
자연스럽게 배웠다...
부모는 자식에게 무엇을 가르쳐야 하는가?
진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알려줘야 하는걸까?
좋은 대학을 나오고 똑똑하게 사는 것이 우선이라고 이야기 해줘야 하는 걸까?
답이 정해져 있지는 않다. 하지만 나의 답은 정해졌다.
나의 어린시절은 나의 무수한 선택의 갈림길에서
결정의 기준을 만들어준 시간이었고, 그 안에 아빠가 있었다.
이렇게 또 그때의 아빠를 그리워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