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토끼

by 나박
좁은 의미에서 상상력은 실존하지 않는 것을 보게 하여 새로운 발명과 혁명을 이끌어내는 인간 고유의 능력을 가리키지만, 상상력의 진정한 위력은 물리적으로 같은 경험을 나누지 않고도 타인에 공감할 수 있게 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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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사의 이야기를 쓴 한 작가의 모 대학 졸업 축사를 굳이 인용하지 않더라도 상상력이 인간에게 얼마나 좋은 영향을 끼쳤는지 우리 모두는 안다. 인간은 상상력 덕분에 많이 편해졌고 성장할 수 있었다. 밤에도 밝게 있을 순 없을까 하는 마음이 전구를 생각하게 했고, 우리도 새처럼 하늘을 날 순 없을까 하는 마음이 비행기를 발명하게 했으며, 사랑하는 사람과 떨어져 있어도 곁에 둘 순 없을까 하는 마음이 전화기를 사용하게 했다. 그밖에도 현재 지구에 있는 무수히 많은 인공물들은 인간의 상상력에 의해 수정되고 보완되어졌다.


사람들은 상상력을 다소 허무맹랑하게 여길지 모르지만, 언젠가는 실현이 될지 모르는 무서움을 발휘하기도 한다. 동양의 어느 작은 나라에서 내놓은 영화가 실제 사회에서 비슷하게 벌어진 경우가, 상상력이 언젠간 실현이 될 수도 있다는 주장을 뒷받침하는 강한 근거가 된다. 상상력으로 만들어낸 이야기가 실제에서 더욱 악질적으로 나타나고 있었고, 그 나라의 많은 예술가들은 현실이 이러한데 우리가 어떻게 창작을 할 수 있겠냐면서 자괴감을 보이곤 했다.


그들의 상상력을 얘기하면 빠지지 않는 얘기들이 여럿 있다. 달과 관련된 상상력이 그것 중의 하나인데, 그들은 달에 토끼가 있다고 믿었고 그 달을 향해 소원을 간절히 빌곤 했다. 유래가 언제부터인지 알지 못하지만 꽤 오래전부터 그들은 달에 토끼가 살고 있다고 생각했다. 또한 지구에서 달의 모양이 완전하게 보일 때마다 소원을 빌던 오랜 풍습이 있는 걸 보면 그들은 다른 이들 못지않게 오래전부터 풍부한 상상력을 갖고 있었다는 걸 알 수 있다.


“어떻게 달에 토끼가 살아? 뻥 좀 치지 마.”


지금은 청년이 된 한 소년이 어렸을 때 친구들에게 달에 토끼가 산다고 얘기하면 줄곧 듣던 소리다. 사실 이 소리 역시, 예술가 본인들의 상상력이 현실보다 시시하여 자괴감에 빠진 나라에서 흔히 들을 수 있는 말이다. 앞서 얘기한 것과 달라 혼동이 있겠지만, 그들에게 풍습은 풍습일 뿐 그걸 일상생활에서 얘기하면 철저히 무시받기 일쑤였다. 해적왕이 되고 싶다고 얘기한 것도 아닌데 왜 다들 나를 뻥쟁이라고 할까, 소년은 한때 생각했다.


소년은 또래 애들에 비해서 순수한 상상력을 오래도록 가지고 있었다. 소년이 크리스마스만 되면 잠자리 머리맡에 빨간 옷 입은 할아버지를 맞이하기 위해 양말을 두었던 것이나, 만화에서 봤던 것과는 다르게 돌아가는 팽이에서 정령이 나오지 않자 팽이를 가슴에 갖다 대어 대화를 시도하려 했던 것 등을 알았을 때 웃어대던 소년의 또래 친구들이, 소년이 그들에 비해서 얼마나 오랫동안 순수한 상상력을 갖고 있었는지 알게 해준다.


그런 소년이 여전히 미지의 영역인 우주에 관심을 가지지 않을 리 없었다. 책만 보면 열에 아홉은 과학책이었는데, 그중에서도 우주와 관련된 책이 대부분이었다. 어린이 신문에 우주와 관련된 기사가 나오면 오려서 스케치북에 붙여 모을 정도로 우주에 관심이 많았던 소년은, 우주에 있는 천체 중에서도 토성을 제일 좋아했다. 다른 천체들과는 다르게 띠가 있는 게 예뻐 보였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좋아했던 천체는 달이다. 물론 별도 좋아했지만, 날 때부터 도시에 살았던 소년은 환경상 밤하늘의 별을 직접 볼 수 없었다. 그러므로 책으로만 접할 수 있는 무수히 많은 별보다 모양이 조금씩 일그러졌다가 다시금 차오르는 걸 직접 확인할 수 있는 단 하나의 달을 소년은 좋아했다. 더군다나 그 달에 토끼가 방아를 찧으며 살고 있다는 얘기는 소년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세상은 이런 소년을 가만히 두지 않았다. 해야 하는 숙제가 있었고, 치러야 하는 시험이 있었고, 가야 하는 학원이 있었으며, 무엇보다 하지 말아야 할 것들이 많아졌다. 달에 토끼가 살고 그들은 어떻게 산다는 식의 상상이, 바로 그가 하지 말아야 할 무수히 많은 것들 중의 한 가지 예시가 되겠다.


“정신 차려. 언제까지 그런 이상한 생각에 빠져있을래?”


소년은 어쩌면 본인이 달에 토끼가 산다고 믿은 인류 최후의 인물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주변 사람들 모두가 위와 같은 말을 했으니까. “우주의 중심은 지구다.”라는 말을 함으로써 종교 재판에서 무죄판결을 받은 뒤 법정 문을 나서면서 “그래도 지구는 돈다.”라고 조용히 중얼거리듯이, 중학교 입학을 앞둔 초등학생 소년은 서서히 세상과 타협을 하기 시작했다. 겉으로는 “달에 웬 토끼? 아직도 그런 생각을 해?”라는 반응을 보였지만 속으론 푸른 지구를 바라보며 방아를 찧고 있을 토끼를 한동안 생각했다.


하지만 세상은 정말이지 소년을 가만히 두지 않았다. 성적이며 석차며 등급이며 상장이며…. 말 그대로 세상을 ‘살아가야했’기에 옥토끼는 서서히 소년의 관심사에서 먼지가 쌓였다. 슬프게도 이건 이 지구의 법칙이다. 달의 법칙은 어떤지 모르지만, 지구에서는 가만히 있거나 내버려 두면 그 위에 먼지가 쌓이기 마련이다. 소년에게 옥토끼는 그러한 존재로 전락해버렸다.


우여곡절 끝에 소년은 청년이 되었고, 진학하게 된 대학에서는 문학을 전공하게 되었다. 청년은 대학에서 자신이 좋아하는 학문을 공부하는 게 좋았다. 하지만 역시나 세상은 청년을 가만히 두지 않았다. “졸업하면 당장 어떻게 살려고 그래?”, “미래는 생각해뒀니?”, “좋아하는 것만을 좇는 네가 얼마나 이상적이었는지 곧 알게 될 거야.” 등과 같이 세상은 청년의 마음을 마구 흔들었다. 소설이, 시가, 치유가, 공감이, 인문학이, 그래서 초라하고 쓸모없게 느껴졌다. 청년은 이때 생각했어야 했다. 세상이 본인을 이런 식으로 흔드는 건, 자신에게 먼지가 쌓이지 않게 하기 위함이 아니라 자신을 세상에 쉽게 편입할 수 있게 하기 위함이란 사실을. 하지만 갓 청년이 된 그는 미처 이런 생각을 하지 못하고 학교에 다니는 내내 불안한 마음을 가졌다.


계속해서 불안한 마음을 가지며 세상 속에서 살아가던 중, 불안함이 불편함으로 바뀌게 되는 사건을 청년은 맞닥뜨리게 된다. 학교 근처에서 점심을 먹던 청년은 TV에서 믿을 수 없는 장면을 본다. 바다에 배가 침몰해가는 모습이 그것인데, 청년이 믿을 수 없었던 건 큰 배가 기울어져 있다는 게 아니라 큰 배가 기울어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긴박함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배에 타고 있던 승객들을 모두 구출했다는 뉴스 속보가 나왔을 때 청년은 그래서 긴박함이 없었던 거구나, 하며 조금 전 자신이 가졌던 의문을 지웠다.


점심을 먹은 뒤 수업을 마저 들은 청년은 집으로 가는 전철에서 아까 봤던 뉴스 속보가 오보였다는 걸 알게 되었다. 오르는 사망자 수와 그에 맞춰 내려가는 실종자 수, 그리고 변하지 않는 생존자 수를 보면서 청년은 머리가 아팠다. 가슴 또한 저몄다.


이 사건은 그 나라 국민들을 양 갈래로 나누어 놓았다. 희생자들의 아픔에 공감하고 아파하는 부류와 이젠 지겹다며 그만하자는 부류. 이 둘의 갑론을박은 서서히 격해졌고 끝내 서로가 서로를 이해할 수 없는 종족들로 여겼다. 청년 또한 “사람이 죽었는데 어떻게 경제를 들먹일 수 있나요? 아무리 자본주의 체제하에서 살고 있다지만 언제부터 그 속에 살고 있는 사람보다 자본을 우선시해왔나요? 본인 아는 사람들이 배에 타고 있었다고 해도 그런 반응을 보일 건가요?”식의 자신의 목소리를 내고 싶었지만, 서로 미워하고 증오하는 모습에 거듭 무기력해져 그럴 수 없었다.


어느 순간 당시의 희생자들을 위해 눈물을 흘리면 “그럴 시간에 공부나 해라.”라든지 “나는 그들보다 사실 내 앞으로의 인생이 더 걱정돼.”식의 얘기가 들려왔다. 그러는 중에 섞이는 비웃음과 조롱은 선택적인 요소였다. 청년은 그때 뉴스에서 봤던 배처럼 이 나라도 기울어져 있는 게 틀림없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없었지만, 그게 대체 언제부터 어떤 이유로 얼마나 기울어졌는지 가늠이 되지 않아 속으로 생각하는 데에 그쳤다.


세상이 하라는 대로 가만히 도서관에서 공부를 하던 어느 날, 어두워진 밤에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청년은 횡단보도 앞에 섰다. 초록 신호등을 기다리던 사람들이 경주마와 다를 바 없어 보였듯이 청년 역시 경주마처럼 건너가야 할 맞은편을 보고 있었다. 그러다가 자신의 마음을 누르고 있는 원인 모를 무엇에 답답하여 잠시 고개를 이리저리 움직이던 중 도로 주변에 위치한 아파트 창문에 비친 보름달을 발견했다. 그때서야 하늘에 보름달이 뜬 걸 알게 된 청년은 아파트 창문에서 눈을 떼고 하늘을 바라봤다. 하늘엔 보름달이 전구처럼 도심을 밝히고 있었다.


신호등이 초록색으로 바뀌어 건너가는 중에도 청년은 다른 경주마들과는 다르게 도심을 밝히는 그 전구를 홀린 듯이 바라봤다. 유난히 밝은 달을 응시하던 청년은 순간 자신의 무의식 어딘가에서 먼지에 쌓여 방치되었던 옥토끼를 꺼냈다. 유독 달이 밝은 건 토끼들이 축제를 벌였기 때문이 아닐까, 그렇다면 그 축제는 어떤 축제일까, 그들도 축제 때 우리처럼 음주 가무를 즐길까 식의 생각이 전구가 되어 머리를 밝게 비추는 듯했다.


사람들을 가만히 내버려 두지 않는 세상과 도로변의 자동차가 내는 소음 때문에 사람들에게 토끼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을뿐더러 그들의 방아 찧는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고 그때 청년은 생각했다. 그럼에도 토끼들을 많은 사람들이 알아차리길 바랐다. 지구와 달의 아득한 거리만큼 사람들은 토끼들을 떠올리지 못할 것이란 걸 청년은 안다. 하지만 그 아득한 거리에 관심을 가지고 어떻게 해야 보고 들을 수 있을지 고민한다면 떠올릴 수 있을 것이라고도 믿는다. 그들의 모습이 우스꽝스러워 보이든 기괴하게 보이든 친숙하게 보이든, 그리고 그들이 내는 방아 찧는 소리가 덩덕쿵으로 들리든 덩기덕쿵으로 들리든 쿵덕쿵으로 들리든 상관없다. 관건은 보는 것이다, 듣는 것이다, 그리고 상상하는 것이다. 청년은 그렇게 생각한다.


지금 이 순간에도 어쩌면 옥토끼는 열심히 방아를 찧고 있을지도 모른다. 지구에서 자신들에게 관심 갖길 바란다는 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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