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상의 나라에서 집으로 돌아올 때

김영하 「보물선」을 읽고

by 나박

어느 행성에서 한 아이를 로켓에 태워 우주로 발사한다. 발사된 로켓은 우연히 지구에 도착한다. 그 아이는 훗날 지구를 구하는 엄청난 힘을 지닌 기자가 된다. 그는 슈퍼맨이다. 파란색 쫄쫄이 위에 빨간 속옷을 입는 슈퍼맨을 떠올리면 배트맨이 빠질 수 없고 배트맨을 얘기하면 스파이더맨, 원더우먼 등의 슈퍼히어로들이 연쇄작용으로 떠오르기 마련이다. 이들의 공통점은 슈퍼히어로이고 모두 역경이 있었으며 그 역경을 딛고 일어나 남들이 갖지 못한 힘을 가지고……. 이렇게 수많은 공통점을 나열한 후 마지막쯤에 나올 수 있는 공통점은 ‘Made in America’이다. 그렇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는 신이 아닌 ‘Made in America’들이 지켜주고 있었다.

하지만 2001년 9월 11일, 맨해튼에 우뚝 솟아있던 쌍둥이 빌딩이 비행기와 부딪혀 무너져 내렸을 때, 그게 전 세계로 실시간 생중계 됐을 때, 그 영상을 전 세계 사람들이 봤을 때, 우리 모두는 환상에서 깨어났다. 슈퍼맨과 배트맨이 있어 그들에게 더 이상의 적은 없을 거라 믿었건만, 테러라는 실체 없는 적들로 인해 우리는 그 환상이 깨져버렸다. 한동안 환상에 빠져있던 우리는 한 사건을 통해 미국의 실체를 확인한 것이다.


대학 시절 ‘역사연구회’에서 재만과 형식은 만난다. 그 시절부터 재만은 형식에게 요상한 이야기를 한다. 황소가 하늘에서 떨어졌다느니 이순신 장군의 이면에는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있다느니 조선총독부 건물에 조선 전역에 감춰놓은 금괴와 군사시설의 위치를 표시한 지도가 있었다느니. 그의 요상한 얘기를 진지하게 듣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진지하게 들었다간 그가 요상한 사람으로 낙인이 찍힐 것이므로.
한동안 형식의 소식을 듣지 못한 재만은 우연히 라디오에서 형식의 소식을 듣게 된다. ‘충무공 동상에 시민 한 분이 올라가 시위를 벌이고 있다.’라고 구체적인 대상이 언급되진 않았지만 재만은 단숨에 형식임을 알아챈다. 재만은 그 뒷얘기가 궁금했지만 슬프게도 라디오는 사람들이 다시 일상생활로 돌아가 일하라는 의미에서 막힌 도로가 다시 정상 소통 되고 있다는 짤막한 멘트 외에는 더 이상 아무 얘기 하지 않는다. 나는 그 리포터를 이해한다. 그는 사람들이 다른 것에 신경을 쓰면 자본주의라는 세계를 굴리는데 그만큼 힘이 분산될 것을 걱정한 것이다. 아아, 따뜻한 마음씨! 그와 같은 따뜻한 마음을 가진 사람이 있기에 오늘도 자본주의는 잘 굴러간다.
형식이 그러거나 말거나 재만은 컨설팅 회사에서 일을 한다. 그는 그곳에서 2억 가까운 돈을 한 해에 벌어들여도 만족하지 않는다. 나는 안다. 재만이 자신의 한계를 궁금해하기에 지금의 상황에 만족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아아, 끝을 모르는 도전정신! 그와 같은 도전정신을 가진 사람들이 많기에 오늘도 자본주의는 잘, 굴러, 간다.
재만은 종종 호텔에서 동업자들과 아침을 먹는다. 일하느라 생긴 단골 룸살롱에선 인간관계를 발전시킨다. 결혼 정보 회사의 도움으로 결혼도 하지만, 하루 24시간도 모자라 부팅하는 시간을 아끼려 컴퓨터를 항상 켜놓는 그는 결혼을 언제 어디서 했는지 기억도 잘 나지 않는다. 소설에 나오지는 않았지만 재만은 분명 『가정을 버려야 직장에서 살아남는다』와 같은 책을 감명 깊게 읽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는 분명히 ‘직장에서 살아남아야 가정을 지킬 수 있으니, 가정을 지키려면 가정을 버려야 한다.’와 같은 논리적 허점이 없는 자명한 진리를 깨달았을 것이다. 아아, 지성인이여! 그와 같은 지성인이 있기에 자명한 진리를 깨닫지 못한 문외한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오늘도 자본주의는 정말이지 잘, 굴러, 간다.
여느 때처럼 재만이 동료들과 아침식사를 하던 중 형식이 보물선이라는 흥미로운 사업 아이템을 갖고 나타난다. 아, 그 전에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 있다. 재만의 동료들은 모여서 식사를 할 때마다 다음과 같은 말들을 한다. “시장의 실패? 웃기고 있네. 공무원들 괴롭겠어. 자기들도 안 믿는 걸 떠들고 있으니 말이야. 뒷구멍으로는 주식 받아 챙기느라 밥이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도 모르면서 마이크만 들이대면 무슨 헛소리들을 그렇게 해대는지.”, “지금 수배중이잖아? 투자자들이 사기로 걸었다던데? 그게 어떻게 사기야? 보물선이 있다고 정말로 믿었다면 사기가 아니지. 하여간 우리나라는 뭐든지 힘으로 다 밀어붙이려고 든다니까. 그 우격다짐하고는……” 자신들과 같은 편인 사람들의 비호는 확실히 해주고, 배신자나 적들은 철저히 응징하는 슈퍼히어로 같은 모습에 나는 감동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아, 이 의리 넘치는 사나이들이여! 으리으리한 의리로 똘똘 뭉친 이들이 있기에 오늘도 자본주의는 의심할 겨를 없이 정말이지, 잘, 굴러, 간다.
실제 있었던 사건들을 이용하여 형식이가 보물선에 대한 타당성을 이들에게 입증받으려 할 때, 이들은 그 밖에도 여러 부분에서 슈퍼히어로의 자질을 보이곤 한다. “자본주의 좋다는 게 뭐야? 자기 돈 가지고 사업하지 않아도 된다는 거 아냐.”, “상장회사 하나를 치자구. 작은 걸로. 건설 쪽이면 좋지. 하나 잡아서 보물선닷컴과 M&A 시킨 후에…….” 형식이가 보물선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을 보이는 것 못지않게 이들은 무서울 정도로 자신들의 일에 대한 전문성을 겸비하고 있다. 아, 이 프로페셔널! 이들과 같은 프로페셔널한 사람들이 있기에 오늘도 자본주의는 결코 의심할 겨를 없이, 정말이지, 잘, 굴러, 간다.
보물선 사업이 추진되고 온 매체가 온갖 꿈과 발견 가능성에 대해서 떠들어댄다. 하지만 재만과 그의 동료들이 지분을 깨끗이 팔아치운 때쯤, 언론은 무서울 정도로 관점을 바꿔 사기에 초점을 맞춰 떠들어댄다. 그러거나 말거나 재만은 아내와 하와이로 여행을 간다. 그들이 하와이에서 나눈 대화는 꽤 인상 깊은데 특히 “행복이란 게 참 별거 아니야. 열심히 일한 뒤에 찾아오는 달콤한 휴식. 뭐 그런 거 아닐까?” 이 부분이 제일 인상 깊다. 달빛이 닿는 유람선의 갑판에서 재만은 아내에게 열심히 일한 사람만이 느껴서 말할 수 있는 말을 한다. 아아….
아, 이젠 지친다. 이 작품은 자본주의에 대한 모순을 냉소적으로 비판하고 있다. 그래서 나 또한 냉소적인 자세를 유지한 채 글을 쓰고 싶었다. 하지만 글을 쓰는 나의 재량 부족 탓인지, 아니면 자본주의에 대해 비판할 게 너무 많아서인지 냉소적인 자세를 유지하기엔 너무 버겁다. 어떠한 사건보다 길 막히느냐 막히지 않느냐에 중점을 둔 라디오 리포터나, 부족하지 않은 자기 수입에 만족할 줄 모르고 가정에 소홀히 하는 재만이나, 어떤 불의도 자신들의 입맛에만 맞으면 감싸주는 재만의 동료들은 모두 자본주의의 폐해다. 사실 갑판 위에서 재만이 아내에게 했던 행복론은 보자마자 소름이 돋았다. 제정신일까 의심도 해본 부분이다.
재만과 아내는 한국으로 돌아왔지만 재만은 국정원의 조사를 받는다. 이게 다 보물선이라는 환상이 깨졌기 때문이다. 자신은 먼저 환상에서 빠져나왔기 때문에 무사할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결국 그 또한 환상이었다는 사실을 재만은 모른다. 재만은 결국 형식에게 삼백만 원 준 것도 시인하고 충무공 동상 폭파 기도도 사전에 인지했다고 얼떨결에 진술한 꼴이 된다. 환상에서 깬 재만은 꽤 치명적이다. 그들의 동료는 말한다. “하, 돈 삼백에 감방 갈 줄이야.”라고. 정보에 밝은 그들도 모르는 게 있는 것 같다. 그동안 그들의 돈 몇 푼이 정보에 어두운 수많은 개미들의 목숨을 위협해왔다는 사실을.
나는 환상의 나라에서 재밌게 놀다가 집에 돌아올 때를 생각했다. 아직도 롤러코스터를 타고 내려올 때의 느낌이 남아있는데, 바이킹의 붕 뜬 느낌도 아직 생생한데 일상으로 복귀해야 하는 슬픔. 나는 이러한 감정들이 보물선의 환상에서 깬 재만과 같진 않더라도 비슷한 느낌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다. 돈의 논리가 세상의 논리가 된 자본주의 사회에서 교보문고의 카피 중 ‘책’을 ‘돈’으로 바꾸면 섬뜩하다. ‘사람은 돈을 만들고 돈은 사람을 만든다’ 우리 모두는 자본주의의 환상에서 얼른 깨어나야 한다. 더 있다간 재만보다 더 치명적일 테니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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