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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경은 May 03. 2023

아는 척하지 말아 주세요

하이텐션에 대응하기에는 기력이 없다

나는 말수가 적다.


상대방의 이야기를 듣고 곱씹어 생각해 보거나

각양각색 다양한 삶의 태도, 가치관을 탐구하는 게 좋다.


괜한 말실수를 하거나 타인에게 지극히 개인적인 나를 보여주는 게 싫어서 말을 줄이는 것도 있다.

여기에 내향적인 성격까지 더해지니 더더욱 그렇다.


조직에서는 스몰 토크가 사회생활의 일부다.

애써 이야깃거리를 찾고 나누려고 애쓰는 것도

업무의 피로도를 높이곤 했으니 내향형 인간은 무엇 하나 쉽지 않았다.


심지어 단골 가게 사장님이 나의 존재를 인식하는 순간

그 호의와 친절이 부담스러워 한동안 발길을 끊곤 했다.


목석같은 내가 미국에 와서 적응하기 힘들었던 것 중 하나도 스몰토크였다.

심지어 낯선 사람들과 스몰토크.


인사는 기본이요, 날씨 이야기, 좋은 하루 보내라는 인사말까지.


길을 걷다 전혀 모르는 사람에게 스스럼없이 칭찬을 건네는 문화 속에서

나는 늘 당황한 얼굴이 되곤 했다.



특히 아기와 함께 있는 순간이 많다 보니 늘 시선의 대상이 되고,

아이를 매개로 대화가 길어지기 마련이다.


여기서 문제가 생긴다.

내가 휘발할 수 있는 너스레에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유창하지 못한 영어는 두 번째 문제요,

딱딱한 내 성격부터 소통에 걸림돌이다.


또 하나.


아기는 아기띠에 안겨 매달려 있거나 팔에 안겨있곤 하는데,

아기를 예뻐해 주는 행인과 자신을 귀여워해주는 것을 알아버린 아기 사이에서 나만 머쓱해지는 것이다.


아기와 나는 물리적으로 밀착되어 있어 거의 한 몸인데

행인과 아기 나이에 내가 끼어버린 느낌이랄까.


아기에게 말이라도 거는 날에는 더 어려워진다.

지금 아기는 겨우 엄마, 아빠, 맘마, 멍멍, 예뻐 등의 말을 할 수 있는데

행인들은 아기에게 귀엽다, 예쁘다, 몇 살이니? 등의 말을 건다.

내가 아기 목소리로 대신 대답하는 것은 정말이지 적응이 안 된다.



아파트 입구에는 교대로 경비를 서는 분들이 계신데,

그중에 한 분이 유난히 활발하고 말이 많다.


몸 둘 바 모를 칭찬도 아낌없이 나누어주시는 분인데 아기에게 관심이 많다.


외출할 때 마주치면 아기는 어디 있냐, 언제 오냐

늘 물어보고 어린이집에서 아기를 데려오는 나,

정확히는 내 품에 안겨 있는 아기를 두 팔 벌려 환영해 준다.


그런데 그는 알까.


그의 과분한 환영이 부담스러워 때때로 먼 길을 돌아

집에 돌아가곤 한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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