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신경은 Jun 19. 2023

뉴욕의 하늘은

미국에 와서 좋다고 느낀 몇 가지 중에 하나.

바로 '날씨' 였다. 

정확히는 한국에 비해 청명하고 깨끗한 대기. 


미국에 온지 반 년동안 공기청정기의 존재감을 잊을 정도로 

이 곳의 공기는 맑고, 깨끗했다.


매년 4월이면 연례 행사처럼 겪어야 했던 비염과 감기도 올해는 나를 지나쳤다.


종종 비가 오더라도 금방 그쳤고,

더운 날에도 그늘에 앉아있으면 선선한 바람이 땀을 식혀줬다.

혹한의 겨울을 금새 잊은 마음은 뉴욕의 날씨 찬가로 쾌재를 부르곤 했다.

특히 우리집의 거실에는 벽면의 3분의 2를 차지하는 

커다란 창문이 무려 8개나 있다.


거실, 주방과 이어지는 발코니까지 합하면 

도합 10개의 창문이 오늘의 풍경을 보여준다. 


소파에 멍하니 앉아 바람에 하늘거리는 나뭇잎을 보는 것이

일상의 일과가 됐을 정도다.


그런데 어느날, 온 집안이 주황빛으로 변했다.

마치 영화 매드맥스의 한 장면을 연상하게 했다. 


별 일 아니겠거니 싶었는데 공기청정기의 수치는 600을 넘겼고 

창문을 잠깐 열었는데 매캐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알고보니 캐나다 산불로 뉴욕 하늘이 오랜지색으로 변한 것이었다.

국경 넘어 수백 킬로미터 떨어진 이 곳까지 산불의 여파가 전해졌다. 


새삼 지구촌은 하나다, 라는 명제가 무섭게 와 닿았다.


어렸을 때 포스터 그리기는 단골 숙제였다.

환경 보호, 산불 예방, 통일 등을 주제로 경각심과 관심을 고취하는 문구와 그림을 그리곤 했다.


둥근 지구본에 사람들이 손을 맞잡고 있는 그림 옆에 

후손에게 건강한 지구를! 이라는 문구를 적어넣었던 기억이 난다.


아이를 낳고 나니 새삼 환경 문제가 더 절박하다.

건강한 지구를 물려주자고 주창해왔던 대상, 후손이 나에게도 생겼기 때문이다.


우리 아이가 살아갈 지구를 위해서 라는 생각이 앞서면

일회용품을 덜 쓰게 됐고, 분리수거를 신경쓰게 됐고, 길가에 쓰레기를 보면 줍게 되었다.

아이를 위해 번거로움을 감수하게 됐다. 


그런데 미국에 와서는 번거로움이 사라졌다. 

이 나라는 분리수거를 철저히 하지 않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당혹스럽고 어색했지만 어느새 익숙해졌다. 


그런데 문득 궁금하다. 또 걱정되기도 한다.

이렇게 뒤섞인 수많은 쓰레기는 어디로 갈까. 


지구온난화로 지구는 점점 더워지고 대형 산불도 잇따른다는데,

후손을 위해 지켜야 할 건강한 지구는 그저 포스터 속 구호뿐인 게 아닐까.




매거진의 이전글 엄마도 엄마가 필요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