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녀가 친할머니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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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잇슈


오늘은 친할머니의 기일이다.

올해로 정확히 3년 상이 된 듯하다.


친할머니가 살아생전에는

전혀 깨닫지 못했던 거리가 있었다.


친할머니와 손녀의 거리.


한국 사회의 고질병 같은 게 있었다.

아니, 어쩌면 아직도 있을 수 있다.

고부 갈등.


가족치료를 공부하기 전에는 몰랐다.

나의 어머니가 시어머니에게 느끼는 적개심으로 인해

나 또한 친할머니와 살갑게 가까워지는 게

결코 수월하지 않았다는 것을.


사실 친할머니가 내게 못되게 구신 건 없음에도

우리 가족은 미묘하게

어머니의 편에서 함께 행동하고는 했다.


과거의 어떤 시점에도

내가 친할머니를 기피하거나 싫어한 적이 없으며


친할머니 또한 내게

자신의 며느리, 나의 어머니에게 한 것처럼

모질게 굴지 않으셨음에도


나와 친할머니에게는 분명

육안으로는 확인할 수 없는

어려운 거리가 있었던 것이다.


3년 전, 그렇게 친할머니를 보내던 날.


주로 명절이나 친할머니 생신 때나

그녀를 뵐 수 있었던 날이면

친할머니가 내 옆에 앉아

도란도란 자신의 이야기를 하시던 장면이

하나하나 스쳐 지나갔다.


나의 마음의 추가 어머니에게 기울어져 있었기에

친할머니에게 외할머니에게 하는 것처럼

마냥 애교 명랑한 손녀가 될 수는 없었지만


때때로 뵙는 친할머니가

손녀로서 반갑고 또 좋기도 해서

그런 친할머니 옆에 앉아

그 말씀을 곧잘 경청하고는 했다.


내가 대학생이 되자마자

아르바이트로 처음 탔던 월급을

친할머니와 외할머니께 각각

고루 용돈도 드렸으니 말이다.


이후에도 두 분 할머니를 뵐 때면

언제나 똑같이 용돈을 드리고는 했다.


나는 당신의 손녀가 맞노라고.


손주들에게 자신의 상비약을 꺼내주시던 친할머니.

설날이면 본인이 공부하신 사주풀이를 우리에게 말해주시며,

한 해의 안녕을 당부해 주시던 친할머니.


가족들이 모이는 날이면

조금이라도 더 가족들하고 지척에 앉고 싶으셔서

아픈 허리에 복대를 찬 채로

방문의 벽면에 기대앉아

자신의 자식과 손주들을 보며, 까르르 웃기도 하셨던.


가족들이 모두

외모가 나와 가장 닮았다고 말했던

고운 얼굴의 그분의 얼굴을 그려보며,

3년 간의 애도를 마무리 짓고자 한다.


사랑하고, 사랑했습니다.

그리고 그립습니다.

할머니.



*사진 출처: iStock 무료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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