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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수영 Jun 29. 2019

상산고 잔혹사?

내가 졸업한 일반고는 수준별로 반을 나눠 수업을 진행했다. 어떤 기준을 둔 것인지 모르겠지만 서울에서 학교를 졸업한 선생들은 A반에서, 나이 많고 은퇴를 앞둔 선생들은 대체로 B반과 C반의 수업을 맡았다. 또 프리미어리그 마냥 승강제가 있어 성적에 따라 반을 옮겼다. 가끔 일취월장한 성적을 받아 승격하는 등 기적의 주인공도 탄생한다. 그런데 소위 A반이었다는 친구들 대부분이 요즘 평범하게 사는 걸 보면, 뭐하는 짓이었는지 모르겠다.

대한민국 학교에게 족구를 권한 '말죽거리 잔혹사'가  보여주려 했던 건 권상우의 근육이 아니라, 대한민국 학교의 족같은 우열반 제도였다. 우수한 인재를 길어내야 한단 당위 앞에 '똘반'으로 분류된 이들이 모멸감을 씻고 위로받으며 마음대로 할 수 있던 공간은 김부선의 분식집뿐인 현실.. 여기서  응축된 분노를 쌍절곤과 족구로써 간결하게 표현한 것이다.


하지만 '말죽거리~'가 그려낸 분노는 역사 속에 박제된 지 오래다. 분노가 유효하지 않은 이유는, 이젠 서로 다른 학교 성적과 뒷 배경을 가진 계급들이 같은 공간을 공유하지 않기 때문이다. 자사고의 탄생은 학급이 아니라 학교를 기초단위로 하는 분리 교육을 가능하게 했다. 적어도 그런 관점에서 상산고에서 의대를 얼마나 가느냐는 본질과 거리가 멀다. 영화 '엘리시움'이 그린 디스토피아가 현실이 되어간다는 게 공포스럽게 다가오는 것이다.

산고 문제에서 매우 흥미롭게 다가오는 지점은 다름 아닌 학부모들의 분노다. 어차피 그 자녀들은 자사고 졸업생이 될 텐데 자사고가 사라는 데 열을 올리는 건 언뜻 자연스럽지 않다. 자녀들이 일반고 후배들과 섞이는 게 불편하기라도 한 걸까. 물론 자사고와 일반고 사이에 그인 절취선을 지우려는 시도가 깔끔해 보이지 않는 건 사실이다. 다만 우리는 여기서 그저.. 난리부르스를 추지 않으면 10년도 안 돼 견고해진 질서에 흠집조차 내기 어려운 현실을 보고 있는 것이다.


이동수업 시절엔 그나마 이동이라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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