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자는 순창에 살았다. 세상을 등진 그는 검찰조사에 협조하는 것으로 착각하며, 보이스피싱 사기꾼의 설계대로 서울까지 올라갔다. 순창과 정읍, 서울까지 전화기 붙들고 11시간을 이용 당했다.
그가 속임에 넘어간 결정적인 이유는 뭘까. 그저 순진해서? 모두가 뉴스를 보는 것도, 보이스피싱 예방법을 익히는 것도 아니다. 묘한 낌새를 직감하는 촉도 저마다 다르다.
한국사회에서 검사, 또는 검찰 집단이 갖는 권위주의적 이미지가 역선택에 일조했다는 해석도 아예 틀린 것은 아니다. 저명인사들조차 검찰에 다녀온 뒤 트라우마를 이겨내지 못하는 경우를 더러 보게 된다. 선량한 시민은 오죽하랴. 사기꾼들이 그 많은 직업군 중 검사를 사칭한 데엔 그만한 사회문화적 배경이 깔려있는 것이라면 무리한 이야긴가.
결론은 이렇게 정리된다. 이해할 수 없는 마음을 어줍잖게 헤아릴 필요는 없다. 그때 그곳의 그를 육하원칙에 따라 그려보고, 옆에 앉아 말을 걸어주는 일이 두 발 딛고 사는 사람의 몫일 뿐이다. 이유를 알아내야 하는 지점은 그래서 따로 있는 것이다. 그는 왜 저곳을 서성였고, 그곳에 앉아 전화를 붙들고 혼자 고민해야 했나.
띄엄띄엄이지만 11시간 녹취를 다 들어봤다. 그 중에 단 10분, 그를 마주했던 누군가가 의심을 거두지만 않았더라도, 하는 아쉬운 생각에 혀를 끌끌 차봤다. 지난 주말, 그가 들렀다는 그곳들을 둘러본 뒤 고속도로를 타고 내려오는 내내 든 생각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