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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수영 Dec 03. 2020

사기공화국
① 어느 부장판사의 한탄

익산 원광대 원룸촌 사기사건.. "OECD 사기범죄율 1위의 이유"

지난해 익산 원광대 학생들을 울린 원룸촌 사기사건, 오랜 기간 취재해 결론이 궁금했습니다. 법원을 찾았습니다. 그런데 어느 판사의 통찰과 문제의식에 숙제만 잔뜩 얻어갔습니다.


왜 대한민국은 사기 치기 좋은 나라가 됐을까요? 희생양을 찾아야 속이 편하는 우리는, 흔히 '판사가 봐줘서'라는 손 쉬운 답을 찾습니다. '형량이 가볍다'란 답안도 '어떻게'와 '얼마나'란 궁금증을 해소해주지 못합니다. 법을 비웃는 현실에 문제 의식을 갖고 '왜'라는 질문에 답 조금씩 찾아가고 있습니다.


'익산 원룸사기' 집주인 중형.. "사기공화국 민낯"

https://www.youtube.com/watch?v=RKvPpwtqsrk&feature=emb_title


'원룸사기' 재판부의 한탄, "사기 치기 좋은 나라"

https://www.youtube.com/watch?v=smVb0x0kIWI&feature=emb_title


아래는 위 보도의 기초가 된 전주지방법원 군산지원 모성준 부장판사의 판결문 일부를 공개합니다. 판결문이라기 보다 논평에 가깝습니다. 법원과 사회가 교감한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내용이 어려울 수 있지만 앞으로 하나하나 사례를 통해 쉽게 설명드리고자 합니다.


군산지원 2019 고단1XXX

"법원이 형을 선고함에 있어서 형법이 규정하고 있는 양정의 조건(형법 제51조)을 고려하여야 함에 더하여, 피고인(특별예방), 피해자(응보) 및 일반인(일반예방)이 모두 납득하고 수긍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형을 정하여야 한다는 것은 시대를 초월하여 너무 나도 자명한 법원의 사명이라고 할 것이다.


그런데 특정 범죄에 대한 법원의 양형에 관 하여 피해자나 일반인이 지나치게 낮은 처단형이라며 도저히 수긍할 수 없다는 의견을 계속하여 제기하는 반면, 행위자들이 더 이상 처벌을 두려워하지 아니하여 해당 범죄가 꾸준히 증가하는 현상이 지속된다면, 이는 법원이 정하는 형이 피고인, 피해자 및 일반 인이 모두 납득하고 수긍할 수 있는 범위 내에 있지 않다는 점을 반증하고 있다고 보아 야 하는 것이고, 이러한 경우 법원은 최소한 피해자나 일반인이 어느 정도 수긍할 수 있고, 잠재적으로 범행을 계획하고 있는 사람으로 하여금 범행에 대한 결심을 주저하게 할 수 있는 정도로는 그 양형에 관한 실무를 변경해나가야 함은 너무나 당연하다. 


한편, 현행 형법은 다수 범죄에 대해서 가중주의를 택함으로써 동일한 형태의 범죄 를 반복적으로 범하여 다수의 피해자에게 상당한 피해를 준 경우에 있어서도 가장 중 한 죄에 정한 장기 또는 다액에 그 2분의 1만을 가중한 범위 내에서 처벌을 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형법 제38조 제1항 제2호). 이에 따라 1건의 사기범행과 수 천건 의 사거범행에 대한 법정형이 별반 차이가 없게 되어(단, 특정경제범죄에 해당하는 경 우 제외), 한 번 사기범행을 저지른 사람이 동종의 사기범행을 계속하여 저지르는 경우 추가적으로 저지른 범행에 따른 실제 처단형의 증가분이 그리 크지 않아 동일한 형 태의 범행을 반복적으로 범하는 것에 대해서는 별다른 억제효과가 없고, 오히려 추가 적인 범행을 장려하는 결과를 낳게 되었다.


특히 위와 같은 범죄를 조직해서 이득을 취해온 수괴와 말단에서 행위의 일부를 분담하는 것에 불과한 공범자의 양형에 있어서 해당 범죄로 처벌을 받는 공범자들 사이에 납득할 만한 차이를 두지 않아 온 현재의 양형실무는 적지 않은 수의 조직적 범죄 가담자들로 하여금 범행을 억제하기는 커녕 해당 범죄의 수괴를 꿈꾸게 하는 잘못된 길로 이끌어온 것이 사실이다.  이러한 형사법상의 가중주의와 양형실무로 인하여 반복적이고 조직적인 형태의 사기 범행이 꾸준히 증가하여 현재 수사와 재판을 받는 사건의 적지 않은 부분을 차지하게 되었고, 급기야 한국이 ‘OECD 사기범죄율 1위’의 오명을 얻기에 이르렀다.


이에 우리나라에서는 대학생, 취업준비생, 신용불량자 또는 고령자 등 상대적으로 취 약한 지위에 있는 사람들을 겨냥한 보이스피싱, 대출사기, 전세금사기, 코인투자사기 등이 창궐하고 있다. 이처럼 한국이 조직적 사기범행의 행위자들에게는 ‘사기치기 좋은 나라’임과 동시에 취약한 계층의 사람들이 정상적인 생활을 영위하기 어려운 나라가 되어가고 있는 것에는 이와 같은 추세를 억제하지 못한 형법상의 가중주의, 세분화되지 않은 사기관련 형벌규정과 사기범행에 대한 양형실무에도 적지 않은 원인이 있다. 


결국 사기죄 중 조직적 또는 악의적 사기범행에 대해서는 최소한 해당 사기범행으로 인하여 야기한 피해의 정도와 불법의 크기에 비례하는 형이 선고되어야 하고, 그와 같 은 형은 피해자와 일반인들이 수긍할 수 있는 범위 내에 있어야 함이 마땅하다. 한편, 그와 같은 형을 선고함에 있어서 과거에 법원의 양형과 관련된 관행이 그와 다르다고 하더라도, 그와 같은 관행이 피고인(특별예방), 피해자(응보) 및 일반인(일반예방)이 모 두 납득하고 수긍할 수 있는 범위 내에 있지 아니하였다고 하는 점이 명백하게 드러난 이상, 법원으로서는 과거의 양형실무를 만연히 따르기 보다는 형법이 정하고 있는 처단형의 범위를 보다 온전히 활용함으로써 피고인, 피해자 및 일반인들이 모두 수긍할 수 있고 납득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정의롭고 바람직한 결론을 내리는 것이 오히려 요청된다고 할 것이다(또한 피고인의 번의 자백이나 편취금의 일부 공탁으로 피고인의 형량을 대폭 경감하거나 집행유예를 선고해오던 형사항소심의 실무를 피의자가 조직적 인 범죄를 계획하고 수사를 받는 과정에서 이미 고려하고 있음을 감안하면, 피의자나 피고인이 위와 같은 항소심의 실무관행을 활용하여 최대한 유리한 형량을 받는 길을 열어두는 것 또한 더 이상 정당화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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