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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수영 Sep 10. 2023

팩트체크로 드러난 1등 벼 졸속퇴출

"1등인 것도 죄?".. 신동진벼 졸속퇴출 논란


‘1등인 것도 죄가 되나요?’


누가 봐도 엉뚱했다. 쌀 과잉공급을 손보겠다며 5년 연속 전국 재배면적 1등인 품종을 퇴출하겠다니. 농림축산식품부의 계획은 일견 ‘고르디우스의 매듭’을 단칼에 자른 알렉산더 대왕을 연상케 했다. 아주 큰 틀에서 발상의 전환이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신동진 농가의 밥줄을 끊는 계획이었다. 정부의 ‘거친 생각’에 농민들은 ‘불안한 눈빛’을 보내다 못 해 원성을 쏟아내고 있었다. 궁금했다. 이런 대담한 계획이 그냥 나올 리 없기 때문이다.


정부가 신동진벼에 적용한 혐의는 ‘다수확’. 재배하면 쌀알이 너무 많이 나온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논리를 깨부술 근거자료를 발견했다. 놀랍게도 정부 산하기관이 최근 발표한 보도자료에 심상치 않은 숫자가 나와 있을 줄이야.


농림축산식품부는 신동진벼의 10a(300평)당 생산량이 596kg이라고 말했다. 퇴출 기준으로 정한 570kg/10a를 넘기 때문에 볍씨 보급을 중단하겠다고 했다. 반면 농식품부 산하 농촌진흥청 자료에 제시된 수치는 자못 다르다. 536kg/10a, 퇴출 기준을 크게 밑도는 수치다.


신동진벼가 처음 출시된 20여 년 전과 현재의 표준재배법이 바뀐 영향이었다. 벼 수확량을 좌우하는 질소비료의 표준량이 줄어든 것이다.


그렇다면 신동진도 상식적으로 생산성 시험을 다시 해 다수확 품종 여부를 재확인해야 맞지만, 그렇게 하지 않고 내버려 뒀다. 그런데도 정부는 실정에 맞지 않는 수치 데이터를 근거로 품종 퇴출 계획을 밀어붙였다. 방어 논리를 개발할수록 자가당착에 빠지는 셈이었다.


수출길 오른 K-퇴출 벼? “신동진은 죄가 없다”


이해할 수 있는 설명은 없었다. 벼 품종을 퇴출할 때 기준으로 삼는다는 생산량(570kg/10a)의 출처를 묻는 취재진의 질문에 “찾아보고 있다”라는 답변이 가장 확실(?)했다. 이게 정부 정책의 민낯이란 말인가.


취재 과정은 한편으로 어떤 노랫말처럼 “쌀 한 톨에 담긴 우주”를 이해한 시간이기도 했다. 종자가 만들어져도 3년 동안 생존력을 시험받고 출시 과정을 거친다는 사실을 얼마나 알고 있을까.


여기에 시장의 선택을 받는 건 전혀 다른 문제다. 기본적인 생산성과 병충해 저항성 등이 뛰어나더라도 뒤안길로 사라지는 품종이 부지기수다. 선택받은 쌀만 밥상머리에 오르고 재배면적을 넓혀가며 가격대를 형성하는 것이다.


신동진이 그렇다. 신동진 관련 브랜드만 무려 88개에 이른다고 한다. 지난해 기록적인 가뭄에 대흉작이 찾아온 북미대륙으로 수출길이 열리면서, 올해 150톤이 넘는 물량이 태평양 바다를 건널 예정이다. 이렇듯 20여 년간 구축되어 온 독자적인 쌀 시장이 3년 뒤면 깡그리 사라질 전망이다. 이것도 잇따른 졸속퇴출 논란에 정부가 퇴출 정책을 조금 연기한 덕분이다.


신동진은 죄가 없다. 아직 써 내려가야 할 항소 이유서가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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