균형을 잃은 사치.
사회가 분열되면 가장 크게 손해 보는 건 부유층입니다.
부자라면 절대 잊어버려서는 안 되는 역사의 교훈이 있습니다. 재산권은 하늘에서 떨어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재산권은 다른 누구도 아닌, 사회 구성원 다수에 의해 지켜집니다. '이것은 내 것이다'라고 말했을 때, 사회 구성원이 납득해줘야 비로소 재산권이 성립합니다. 이 사실을 잊어버린 부자는 비참하게 몰락했습니다. 부르봉 왕가가 그랬고, 로마노프 왕가가 그랬고, 그 밑에서 권세를 누리던 자본가가 그랬습니다. 모든 권력을 쥔 왕실도 몰락했는데, 같은 법 아래에 있는 부자가 무슨 수로 사회적 흐름에 거스를 수 있을까요?
부유층은 누가 무엇을 얼마나 소유하던지 사람들이 신경쓰지 않기를 바라지만, 같은 사회에 속해 있는 이상 그런 일은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누군가가 너무 많은 돈을 가진다는 말은 그만큼 큰 권력을 가진다는 뜻입니다. 지나친 권력 격차는 피라미드 하층부에 있는 사람들에게 생존 위협입니다. 세상 모든 부자가 자기 권력의 무게를 이해하고 고결하게 행동하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갑질'은 해외 사전에 등재될 만큼 우리나라의 일상이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따라서, 소유 격차를 신경쓰지 말라는 말은 생존 위협을 신경쓰지 말라는 뜻이기도 합니다. 생물에게는 말이 안 되는 이야기인 셈입니다.
모든 권력에는 견제와 균형이 필요합니다. 각 개인이 동등하게 부와 권력을 소유하는 일은 위험해도, 각 계층이 서로의 폭주를 견제할 수 있을 만큼 균형을 이루는 일은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실제로, 선진적인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여러 이해관계자가 함께 기업 경영에 참여하고, 고용주가 일방적으로 노동자의 생존을 결정지을 수 없습니다. 발렌베리 가문처럼 현명한 부유층은 사회의 일원이 되려고 했고, 사회로부터 엄청난 소유를 인정받을 수 있었습니다. 사회적 왕따가 되면 어떻게 되는지, 서구의 부유층은 이해하고 있습니다.
보다 불평등해지기 위해 노력하는 일은 자멸입니다. 사회와 멀어지려고 하면 할수록 재산권도 위험해집니다. 과도한 권력 격차 속에서 고립감, 불안감, 박탈감을 느끼는 사람들이 늘어난다면, 아무리 부유해도 안전하기 어렵습니다. 권력 격차를 극대화하는 동시에 안전을 지키려면 무력에 의존해야 하는데, 무력이 중요해지면 결국 권력은 돈에서 총으로 넘어가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전근대 일본에서는 막부의 군사독재가 성립했고, 현대 아프리카에서는 군벌들이 득세하고 있는 것입니다. 멀리 볼 줄 아는 부자라면, 디즈레일리의 경고를 잊어서는 안 됩니다.
"오두막이 행복하지 않으면 궁전도 안전하지 않다."
- 벤자민 디즈레일리, 영국 보수당 총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