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완 Jun 13. 2023

우리도 잘 살아남아 보세

한국형 위기해법, '기업가형 국가'

지금 오염수가 중요한 게 아니다. 오염수를 마실 나라 자체가 사라지려 한다. 이대로라면 인구가 줄어서 시장과 안보가 무너질지 모다. 더 많은 사람이 자살을 시도할지 모르고, 나라 전체에 마약과 묻지마 폭력이 확산할지도 모른다. 세상 어디로든 떠날 수 있는 사람을 제외하면, 모두가 잠재적 피해자다. 해결할 방법은 있다. 하지만, 누구도 그 방법을 원하지 않는다.

선진적인 국가들은 사회문제에 적절히 개입한다. 모두의 일할 능력을 개발하고, 충분히 보상받게 한다. 선진 국가에서는 누구도 위기 앞에서 혼자 되지 않는다. 물론, 고립에서 벗어나는 대가로 많은 세금을 낸다. 덴마크인은 소득의 절반을 세금으로 낸다. 심지어 부자든 빈자든 정률에 가깝게 소득세와 소비세를 감당한다. 세금은 현대인이 협력하는 방법이고, 선진 국가는 세계에서 가장 두텁게 협력한다.

문제는 우리다. 우리는 세금을 내는 일에 익숙하지 않다. 우리는 세금 혐오 이야기에 절여졌다. 조선시대를 다룬 사극을 보면, 항상 나라가 세금을 과하게 징수하는 탓에 선량한 백성이 고통받는 모습이 나온다. 감세는 언제나 좋은 정치로 포장된다. 인간이 호모 픽투스(이야기하는 사람)이라는 점을 생각해 보면, 세금 혐오 이야기의 영향을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

더 중요한 공범은 따로 있다. 우리는 서로를 제일 미워한다. 한국인의 적은 한국인이다. 누구도 혐오하는 인간을 믿고 가진 것을 나누고 싶지 않을 것이다. 아무리 믿을 수 없어도, 살아남으려면 옆 사람과 협력해야 하지만, 사람은 원래 근시안적이다. 세율은 신뢰와 비례한다. 덴마크인은 서로를 믿는 만큼 세금을 내고, 우리는 우리를 믿는 만큼 세금을 낸다. 이게 제일 큰 문제다. 우리는 서로를 미워하기 때문에 희망도 미워한다.

이대로 다 같이 고립과 불안의 구렁텅이로 굴러 들어가야 할까? 당장의 혐오감에 떠밀려서 내 안전과 노후, 가능성을 모두 포기해야 할까?

다행히 다른 방법이 있다. 우리 앞세대가 남긴 유산이 있다. 우리 앞세대는 산전수전을 다 겪었다. 잔혹한 일제시대도 겪어 봤고, 가혹한 동족상잔도 겪어 봤다. 그 폐허 위해서 나라를 새로 일으켰다. 우리는 그 시대를 참고할 수 있다.

우리만의 정부가 막 들어섰을 때, 우리나라는 '무세국가'였다. 세금을 거둘 행정조직도 없었고, 담세력을 파악할 자료도 없었고, 애초에 세금을 감당할 산업 자체가 없었다. 우리에게 남은 건 일제가 버 인프라과 해외 원조 뿐이었다.

그 와중에 공산주의자들에게 침략받아서 모든 걸 잃었다. 여기서부터는 해외 원조로도 부족했다. 새 정부는 여러가지 재건 계획을 세웠지만, 돈이 부족했다. 결국 이도저도 못하다가 당시 최고 엘리트였던 군부에 권력을 잃었다. 권력을 잡은 군부는 급진적인 수단을 골랐다. 일본의 과거사 책임을 면제해 주고, 독일로 광부와 간호사를 보내고, 베트남에 군인을 보냈다. 그렇게 자본을 확보했다.

군부는 확보한 자본으로 여러 기업을 일으켰다. 민간기업에게도 투자했다. 이 시기에 우리가 아는 대기업들이 나타났다. 삼성과 현대는 정부 지원 덕에 성장했고, 대우와 포스코는 국영기업이었다. 조세 행정은 여전히 허술했다. 지하경제도 만연했고, 심지어 부가가치세도 없었다. 하지만 그런 상황에서도 우리나라는 산업을 일으켰다. 물론 군부의 오판 탓에 또 한 번 모든 걸 잃을 뻔한 적도 있지만, 결과적으로 우리는 낮은 세금으로 큰 결과를 창출했다.

한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군부가 경제개발의 성과를 착복하거나 민영화했다는 점이다. 정부는 정부 계획과 투자 덕에 일어난 기업을 하나 둘 민간에 팔았다. 그 성과를 흡수할 장치도 마련하지 않은 채, 황금알을 낳는 거위를 극소수 부자에게 넘겨줬다. 이런 기조는 민주화가 성공한 뒤에도 유지되었다.

만약, 정부가 투자의 대가로 기업의 지분을 갖는 동시에 사회적 책임을 요구했다면 어땠을까. 바이든 대통령이 보조금을 주는 조건으로 초과이윤과 보육시설을 요구한 것처럼, 우리 정부도 사회적인 투자자처럼 생각하고 행동했으면 어땠을까. 바로 여기에 우리가 찾는 '다른 방법'이 있다.

정부는 기업이 되어야 한다. 정확히는, 국민연금처럼 자율성, 투명성, 전문성을 가진 공공투자은행을 설립해서 혁신을 주도하고 토지를 경영해야 한다. 시장경제에서 자본소득이 발생할 수 밖에 없다면, 정부가 그 자본소득을 창출해야 한다. 시장이 창출하는 이윤을 세금으로 흡수하기 어렵다면, 직접 시장에 뛰어들어서 이윤을 창출해야 한다. 다행히, 지금은 꽤나 발전한 덕에 해외 원조나 무리한 파병은 필요하지 않다. 약간의 정부부채를 가미해서 지금 가진 것을 극대화하면 된다.

각자가 소득의 일부를 한 곳에 모으고 잘 나눈다면, 희망이 있다. 많은 나라들이 모범을 보여줬다. 하지만 모범은 모범일 뿐이다. 다른 상황에 처한 모두가 같은 방법으로 난관을 빠져나 수는 없다.

우리는 우리 식대로 해결해야 한다. 미국인도 혀를 내두르는 학구열과 엘리트주의, 혁신성을 공공부문으로 끌어들여야 한다. 뛰어난 경제학자 마리아나 마추카토가 이야기한 것처럼, 우리는 기업가형 국가를 만들어야 한다. 기업가형 국가가 직접 자본소득을 창출하고 공정하게 분배한다면, 사회문제를 억제하는 동시에 증세를 감당할 마음의 여유도 키울 수 있을 것이다.

50년 전에 외친 구호가 '잘 살아보세'였다면, 지금 외쳐야 할 구호는 '잘 살아남아 보세'다. 그 시절의 교훈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다면, 한국식 희망을 창출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할 수 있다.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작가의 이전글 균형을 잃은 사치.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