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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완 Jun 14. 2023

통제 없이 열정 없다

우리가 열심히 일하지 못하는 이유

"이 산업에는 열정적인 인재가 필요하다. 높은 급여만 보고 하면 안 된다."
- TSMC의 류더인 회장

우리에게는 회장님 말씀이 이름보다 더 익숙할지도 모르겠다. 미국 애리조나에서 일하는 한 직원이 우리나라의 잡코리아 같은 미국 취업사이트에 TSMC 기업 문화를 고발하는 글을 올렸다. 직원에 따르면, TSMC는 주말까지 하루 12시간 동안 일을 시켰다고 한다. 이 소식을 들은 류더인 회장의 반응이 저 발언이다. 대만의 기업 문화도 만만치 않은 듯하다.

대만만의 문제가 아니다. 일론 머스크도 그렇고, 전세계 어디에서든 자기 밖에 모르는 기업인은 노동자가 여가보다 일을 사랑하기를 바란다. 스스로 모범도 보인다. 머스크처럼 열정적인 기업인은 자신의 꿈을 위해 누구보다 과로한다. 기업인은 자신의 꿈과 주인 의식을 노동자와 공유하고 싶어하고, 그래야 한다고 믿는다.

이는 모순적인 과욕이다. 기업인은 노동자가 주인처럼 일하기를 바라지만, 정작 동등한 동업자로 대하지는 않는다. 몇몇 훌륭한 사례를 제외하면, 기업은 권위주의적인 조직이다. 기업인은 일방적으로 지시하고, 중간관리자는 지시가 잘 이행되는지 감시한다. 이런 구조에서 노동자는 자신의 작업량이나 작업 방식을 통제할 수 없다. 통제력을 공유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명령받는 사람을 동업자라고 부를 수는 없을 것이다. 동업자로 대우하지는 않으면서 동업자 같은 열정을 요구하는 것은 착취다.

통제력이 없는 곳에는 열정도 없다. 이는 이념이 아니라 과학의 영역이다. 사람은 자신의 신체와 주변 환경을 통제하고 싶어한다. 주변을 잘 통제할 수 있을 때 사람은 기쁨이나 안도감을 느낀다. 반대로, 통제불가는 곧 생존위협이다. 실제로, 위계적인 조직에서 통제 권한이 적은 사람일수록 스트레스에 민감하고 더 자주 아프다. 그런 사람이 열정적으로 일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실제로 열정을 공유하는 조직은 구성원끼리 수평적으로 소통하며 여러 권한도 공유한다. 생산성이 높은 나라에서는 직장 민주주의가 발달했다. 가장 적게 일하면서도 다른 나라와 대등하게 경쟁하는 독일과 북유럽은 노동자에게 많은 권한을 보장한다. 노동자는 자신의 대표자를 이사회에 보낼 수 있고, 일방적으로 해고당하거나 노동시간 연장을 명령받지 않는다. 그런 곳에서 노동자는 징집병보다 동업자에 가깝다.

안타깝게도 유럽 밖 노동자는 기업인의 동업자가 아니라 소속감도 없이 끌려 온 전근대 징집병이다. 소수의 전문직 종사자를 제외하면, 노동자는 꿈이 아니라 생존을 위해 일한다. 자신의 성적에 맞게 학교에 들어가고, 학력에 걸맞게 일자리를 고른다. 취업하고 나서는 위에서 내려오는 대로 일한다. 산업 민주주의가 발달한 곳이 아니라면, 노동자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별로 없다. 사실상, 대다수 노동자는 자신의 목표를 실현하기 위해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다.

이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 기업인은 전체주의자다. 전체주의 사회는 구성원에게 쉴틈도 보상도 주지 않는다. 오직 전체의 승리를 위해 모두에게 과로를 강요한다. 전체주의 사회에서 노동의 대가로 휴식과 보상을 바라는 건 이기심이자 반역이다. 대신 구성원이 승리에 기여하다가 다치거나 죽으면, 전체주의 사회는 당사자가 누릴 수 없는 영광을 준다. 수준 낮은 기업도 비슷하다. 과장하자면, 수직적인 기업과 나치 독일의 차이는 '탈출 절차가 쉬운가 어려운가' 뿐일지도 모른다.

물론, 수직적인 기업에서도 야망을 불태우는 직원은 있을 수 있다. 어디를 가나 예외적인 인간은 있기 마련이다. 하지만, 병든 조직에 잘 적응하는 사람이 꼭 건강하고 유능하다고 말할 수는 없다. 무엇보다, 일부 사례만 보며 나머지 사례와 관찰 가능한 조건을 무시하는 건 확증편향이다. 다시 말해, 류더인 회장 탓에 호모 이코노미쿠스는 또 설자리를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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