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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완 Jun 18. 2023

오염수 방류에 반대하기 전에

우리에게는 보류라는 선택지도 있습니다

오염수 방류를 잠시 보류하자고 주장할 수는 있어 보입니다. 일본이 데이터를 충분히 모으지 않았다는 비판을 마냥 무시할 수는 없습니다. 안전 문제를 일본 정부의 양심에만 기댈 수는 없습니다.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를 관리하던 도쿄 전력은 자국 총리도 속이려고 하다가 들통난 적 있습니다. 보다 정밀하게 데이터를 검증하려는 것은 과학적으로 타당합니다.

하지만 데이터 부족이 오염수 방류 반대라는 결론으로 이어지지는 않습니다. 데이터에 문제가 있다면, 처리 과정을 다시 검증한 후에 오염수를 방류한다는 선택지도 가능합니다. 찬성에 열려 있는 잠정 보류는 결사 반대와 다릅니다.

무엇보다, 어떤 경우에도 오염수 방류를 받아들일 수 없다는 태도는 그닥 윤리적이지 않습니다. 거대한 자연재해를 겪은 나라에 모든 책임을 전가하는 것은 연대 정신에 어긋납니다. 그 나라가 일본이라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일본과 너무 가깝고, 일본의 위기는 우리에게 썩 좋은 일이 아닙니다. 우리와 전쟁을 끝내지 않은 관계인 북한에는 인도적 지원을 아끼지 않으면서 일본은 일본이라 싫다고 이야기한다면, 이는 부당한 인종차별일 뿐입니다.

물론 오염수 자체는 자연재해보다 도쿄 전력의 부실한 관리 탓에 발생했습니다. 문제는 원인이 아니라 처리 능력입니다. 책임은 능력을 전제해야 합니다. 갓난아기가 물병을 깨뜨렸다고 해서, 갓난아기에게 유리조각까지 전부 청소할 책임을 전가하는 건 가혹합니다. 도쿄 전력은 일본 전체가 감당하기 힘든 일을 저질렀고, 그 피해를 무고한 일본인도 함께 짊어지게 생겼습니다. 온갖 사회문제와 국가부채를 짊어진 일본의 사정을 고려할 때, 오염수를 적절히 처리한 다음 바다의 정화력에 맡기는 대안이 최선일 수 있습니다.

바다는 우물이 아닙니다. 철근따위는 견딜 수 없는 힘을 발휘하며 물을 실어나르는 파이프입니다. 물을 정화할 때, 우리는 건져낼 수 있는 오염물을 최대한 건진 다음 물을 끓이거나 더 많은 물로 희석합니다. 바다에 오염수를 방류하는 것은 우리가 물을 정화하는 방식과 크게 다르지 않은 셈입니다. 바다의 정화력을 초월하는 쓰레기 투기는 문제지만, 바다가 감당할 수 있는 범위라면 바다에 기대는 일도 충분히 고려할 수 있는 선택지입니다.

과학도 사람이 하는 일입니다. 완전히 객관적일 수 없습니다. 과학자에 따라서 고르는 데이터가 다를 수 있고, 지지하는 가설이 다를 수 있습니다. 그래서 논리, 근거, 실험이라는 공용어를 활용하는 공론장이 필요합니다. 각자 다른 곳에서 서로를 저격하는 정쟁터가 아니라, 한 곳에 모여서 함께 검증하는 과학 공동체가 필요합니다. 찬성하는 쪽이 너무 권위적으로 나오는 건 사실이지만, 반대하는 쪽은 반대하기 위해 연대 의식도 저버리고 있습니다. 과연 무엇을 위한 반대인지 검증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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