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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완 Jul 08. 2023

을에게는 방패가 필요하다.

경직된 위계가 우리를 침몰시킨다.

우리나라 직장인은 마음 속에 사표를 품고 출근한다. 그만큼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다. 하지만 우리나라 사람은 직장 내 과도한 권력 격차가 스트레스의 원인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간혹 어떤 사람은 후쿠시마 오염수 문제를 두고 과학을 앞세우면서도 일상 속에서는 과학을 철저히 무시한다. 무엇이든 개인을 탓하는 귀인 오류에 빠진 탓에, 적지 않은 사람이 직장 스트레스도 개인의 인간성에 달려 있다고 여기는 것이다.


사회적 동물은 위계질서에 민감하다. 인간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누가 내 위에 있고 아래에 있는지 순식간에 파악한다. 그리고 자신이 너무 아래에 있다고 느끼면 스트레스를 받는다. 철제 우리 없는 초원에서 늑대를 만날 때처럼 적절한 보호 장치 없이 갑을 만나면, 누구나 스트레스 탓에 온몸이 굳을 수 있다. 상대방이 나를 괴롭히지 않을 것이라고 믿을 수 있을 때까지, 우리는 자신의 처지를 온몸으로 깨닫는다.


이런 말 그대로 경직된 위계질서는 우리나라가 부족한 능률을 시간으로 때우는 원인일지도 모른다. 통제 불가능한 스트레스가 인지능력과 생산성에 얼마나 해로운지에 대해서는 굳이 강조할 필요 없을 것이다. 사람이 위계질서에 민감하고, 을이 갑을 견제할 방법이 마땅치 않다면, 위계질서에 속한 사람은 자기 능력을 발휘하기 힘들 것이다. 모든 것을 일방적으로 결정하는 사장은 자기 직원이 최선을 다해주기를 바라서는 안 되는 셈이다.


실제로 생산성이 높은 나라는 대체로 위계질서가 엄격하지 않다. 덴마크와 독일 등은 근무시간이 적으면서도 한 사람 당 생산하는 부가가치가 매우 높은데, 하나 같이 직장인에게 많은 권한을 보호한다. 덴마크와 독일의 직장인은 해고와 고용, 근무시간을 고용주와 함께 결정한다. 프랑스와 벨기에, 영국과 아일랜드도 그렇다. 이런 곳에서는 유기적으로 일하기 위해 권력 격차를 받아들이더라도, 을은 갑에게 일방적으로 공격받지 않는다.


과학정치를 이야기하면서 인간 과학을 무시하는 것은 모순이다. 우리나라 중소기업, 군대, 관료조직이 경직된 이유는 말 그대로 스트레스 탓에 구성원의 몸이 굳어 있기 때문이다. 을질을 걱정할 수도 있지만, 철저히 위계적인 우리나라에서 과연 을질이 쉬울까, 갑질이 쉬울까. 개인의 건강 뿐만 아니아 나라 전체의 생산성을 챙기기 위해서라도, 이제는 을에게 갑을 견제할 힘을 보장해야 한다. 여기서부터 과학정치가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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