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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완 Jul 05. 2023

우리가 아는 미국은 없을지도 모릅니다.

강력한 연방정부

한국 기준으로 어제가 미국 독립기념일입니다. 우리는 같이 축하해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미국과 가깝지만, 사실 미국을 굉장히 오해하고 있습니다.

흔히 미국하면 자유시장경제를 떠올립니다. '중앙정부가 시장경제에 간섭하지 않은 덕에 또는 최소한만 간섭한 덕에, 미국이 세계 최강국이 되었다.' 많은 사람이 이렇게 믿습니다.

하지만, 미국은 우리 생각만큼 시장에 관대하지 않았습니다. 독립 직후부터 바이든 행정부까지, 연방정부는 '덕과 힘을 모두 갖춘 미국'을 만들기 위해 경제에 적극 개입해 왔습니다. 미국이 자유시장으로 완전히 기울게 된 시기는 나라 전체가 반공주의에 불타오르던 냉전기, 그나마도 아주 잠시 뿐입니다.

미국의 국부들은 미국이 얼마나 특별한 위치인지 잘 알고 있었습니다. 미국인은 신대륙에서 새로운 전통을 일궈야 했습니다. 특히, 자신들을 억압한 영국과는 다른 방식을 채택해야 했습니다. 예를 들어 영국이 혈통 덕에 힘을 보장받는 세습 귀족의 나라였다면, 미국은 자신의 능력으로 지위를 쟁취하는 자연 귀족이 미덕에 따라 서로를 견제하는 나라여야 했습니다.

신생 미국은 경제 정책에서도 영국과 거리를 뒀습니다. 당시에 영국은 탐욕스러운 상인이 활개치는 나라로 통했습니다. 미국의 국부들은 규제 없는 상업과 재산권을 믿지 않았습니다. 공화국은 사람들의 탐욕이 아니라 품성을 양성해야 했습니다. 무엇보다 유럽에 대응할 수 있을 만큼 산업을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자유 무역에 의지할 수 없었습니다.

산업강국 미국을 만들기 위해, 초대 대통령인 조지 워싱턴과 초대 재무장관인 알렉산더 해밀턴은 보호 관세를 도입하고 정부가 주도하는 국토 개발 계획을 세웠습니다. 해밀턴은 국립은행도 설립했습니다. 국부들은 연방정부가 국내 산업을 보호하고 인프라를 구축해야 한다고 믿었고, 이런 기조를 영국과는 다르다는 의미에서 '미국 체제'라고 불렀습니다.

"애덤스가 견제되지 않는 재산권을 견제되지 않는 다수의 영향력만큼이나 불신했다는 사실을 미국 역사를 공부하는 사람들은 흔히 잊어버린다."
- 러셀 커크, 보수의 정신.

물론 국부들이 모든 계획을 완수할 수는 없었습니다. 갓 태어난 신생정부는 허약했습니다. 주 정부는 연방정부에 저항했고, 분이 안 풀린 영국은 미국에 경제제재를 가했습니다. 연방정부는 꾸준히 힘을 키울 기회를 엿봤지만, 그럴 때마다 사건이 터졌습니다. 영국군이 백악관이 불태운 적도 있고, 남부 주들이 반란을 일으키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미국 체제는 19세기까지 이어졌습니다.

"새로운 연구 성과에 따르면, 19세기 미국에서 국가가 허약한 존재였다는 관념응 이제 하나의 신화에 지나지 않는다."
- 배영수, 미국의 자본주의 문명.

19세기 이후에도 연방정부는 경제에 손을 놓지 않았습니다. '전사들의 나라'를 원한 시어도어 루즈벨트는 경쟁 질서를 회복하기 위해 독점 기업과 싸웠고, 우드로 윌슨은 연방 단위의 사회보장제도를 도입하려 했습니다. 이때부터 미국에서도 '자유주의'라는 단어가 사용되었는데, 여기에 자유방임이나 불가침한 재산권이라는 의미는 없었습니다.

이후 프랭클린 루즈벨트가 '국가부흥'을 앞세우며 보다 강력한 연방정부를 세웠습니다. 루즈벨트 행정부는 인프라를 정비할 뿐만 아니라 세금을 올리고 공공일자리를 창출했습니다. 물론 그 당시에도 자본가와 주 정부의 반발 탓에 원래 뉴딜 관료들이 세웠던 계획을 고스란히 실행하지는 못했지만, 지금까지와는 확연히 다른 연방정부를 세우는 데에는 성공했습니다.

"자유방임주의는 죽었다. 사회 통제 만세!"
- 뉴딜 시대 혁신주의 관료 중 한 사람
('뉴딜, 세 편의 드라마', 볼프강 쉬벨부시 저)

연방정부의 힘은 계속 강력해 졌습니다. 자유주의적이었던 드와이트 아이젠하워는 당적이 달라도 루즈벨트 행정부의 기조를 이어받았고, 린든 존슨은 빈곤과의 전쟁을 선포하며 보다 적극적으로 재정 규모를 확대했습니다. 로널드 레이건이 감세와 규제 완화를 약속하기는 했지만, 냉전과 사회적 분열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재정 지출을 유지해야 했습니다. 다시 말해, 레이건 시대에도 연방정부는 경제를 방관하지 않았습니다. 안보를 위해서는 그럴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지금, 바이든 행정부는 역사상 가장 강력한 연방정부를 만들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연방정부가 인프라 개발과 독점 견제에 집중했다면, 여기에 더해 바이든의 연방정부는 보조금을 주는 대신 초과이윤을 환수하고 노동권을 강화했습니다. 이전보다 연방 단위의 사회보장제도도 크게 확대했습니다.

우리가 아는 '자유시장' 미국은 환상에 가깝습니다. 미국은 순전히 민간 기업가의 혁신에만 의존하지 않았습니다. 미국의 성공 뒤에는 균형감과 합리성을 가진 연방정부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우리나라 사람들은 미국사에 관심이 없습니다. 조선 선비들이 경전 속 중화질서를 존숭한 것처럼, 우리나라 사람들도 우리 마음 속 아메리카를 사랑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미국관은 크게 바뀌어야 합니다.


참고자료. 직접 찍은 사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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