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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완 Jul 18. 2023

떳떳하지 못한 제헌절

우리는 계승하지 못했습니다

사람들이 고립되었다. 기나 긴 경기침체와 코로나 확산 탓에, 재산이나 전문직 일자리를 갖지 못한 사람은 위기를 앞두고 혼자가 되었다. 그래서인지, 고독사하는 노인과 우울감을 호소하는 중년, 목숨을 끊는 청년이 늘어나고 있다.

상황이 이런데, 우리나라는 아직도 작은 정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예산 규모를 크게 늘리기는 했지만, 여전히 우리나라 정부가 사회복지제도에 지출하는 예산 규모는 여전히 주요국 중에서 가장 낮다. 그나마 늘어난 부분도 효과적이지 않은 정책이나 코로나 확산에 대응하는 데에 사용된 탓에, 다수는 일상 속에서 늘어난 복지 예산을 체감하지 못하고 있다.

75년 전에 활약한 제헌의원들이 우리나라의 지금 모습을 본다면 어떻게 생각할까. 과연 헌법 가치가 충실하게 실현되었다고 여길까. 그러지 않을 것 같다.

흔히 우리나라의 헌법 가치를 자유민주주의 한 단어로 요약한다. 사실 자유민주주의는 굉장히 모호한 말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북유럽의 사회민주주의 질서까지 포괄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자유민주주의는 개입을 억제하고 시장경제를 보호하는 정부라는 보수적인 의미로 통한다. 자연히, 많은 사람들이 우리나라의 헌법 가치를 '작은 정부론'으로 해석하고 있다.

이는 굉장한 오해다. 우리나라 헌법에는 작은 정부를 요구하는 조항이 없다. 제헌절에 공포된 첫번째 헌법부터 현행 열번째 헌법까지, 대한민국헌법은 정부가 국민 생활을 책임져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강조했다. 특히, 첫번째 헌법은 급진적으로 보일 정도로 정부에 많은 책임을 부과했다. 다시 말해, 처음부터 우리나라는 ‘사회국가’로 시작했다.

- 사회국가는 적극적이다.

일반적으로 사회국가는 야경국가의 반대말로 통한다. 야경국가가 국방, 외교, 재판 같은 최소한의 기능만 맡는다면, 사회국가는 사회정의를 실현하기 위한 경제 개입, 불평등 시정 등 보다 광범위한 기능을 맡는다. 우리나라 헌법재판소도 사회국가를 이런 의미로 규정했다.

"사회국가란 한마디로, 사회정의의 이념을 헌법에 수용한 국가, 사회현상에 대해서 방관적인 국가가 아니라 경제, 사회, 문화의 모든 영역에서 정의로운 사회질서의 형성을 위하여 사회현상에 관여하고 간섭하고 분배하고 조정하는 국가이며, 궁극적으로는 국민 각자가 실제로 자유를 행사할 수 있는 그 실질적 조건를 마련해 줄 의무가 있는 국가이다."
-  헌재 2002. 12. 18. 2002헌마52.

우리나라의 첫번째 헌법은 이런 사회국가원리를 선명하게 반영하고 있다.

"대한민국의 경제질서는 모든 국민에게 생활의 기본적 수요를 충족할 수 있게 하는 사회정의의 실현과 균형있는 국민경제의 발전을 기함을 기본으로 삼는다. 각인의 경제상 자유는 이 한계내에서 보장된다."
- 대한민국헌법 제1호, 제84조.

제84조의 사회적인 면은 우선순위에 있다. 제84조에 따르면, 우리나라 경제질서의 기본은 사회정의의 실현과 균형있는 국민경제의 발전이다. 경제활동의 자유는 이 목적에 어긋나지 않는 한에서 보장된다. 다시 말해, 제84조는 경제활동의 자유보다 사회정의의 실현을 앞에 두고 있다.

그 다음에 나오는 조항은 더 급진적이다.

“광물 기타 중요한 지하자원, 수산자원, 수력과 경제상 이용할 수 있는 자연력은 국유로 한다. 공공필요에 의하여 일정한 기간 그 개발 또는 이용을 특허하거나 또는 특허를 취소함은 법률의 정하는 바에 의하여 행한다.”
- 대한민국헌법 제1호, 제85조.

“중요한 운수, 통신, 금융, 보험, 전기, 수리, 수도, 까스 및 공공성을 가진 기업은 국영 또는 공영으로 한다. 공공필요에 의하여 사영을 특허하거나 또는 그 특허를 취소함은 법률의 정하는 바에 의하여 행한다. 대외무역은 국가의 통제하에 둔다.”
- 대한민국헌법 제1호, 제87조.

요즘 시점으로 보면, 첫번째 헌법은 사회국가를 넘어서 사회주의 국가를 요구하는 것처럼 보인다. 실제로, 당시 제헌의원 중에는 조봉암 같은 사회주의자도 포함되어 있었고, 제헌헌법의 토대가 되는 임시정부 헌장에도 사회주의로부터 간접적으로 영향받은 삼균주의 원칙이 포함되어 있었다.

물론, 제헌의원들이 사회주의 헌법을 구상한 것은 아니다. 제헌의원들이 원한 것은 어디까지나 독립된 민주공화국이었고, 이를 위해서 사회주의와 자본주의를 절충하려 했다. 어쩌면, 제헌헌법은 경제학자 폴 새뮤얼슨이 이야기한 중도의 길에 가장 부합할지도 모른다.

- 사회국가는 국민을 통합한다.

임시정부는 어떤 나라를 만들어야 할지 방침을 정해뒀는데, 그 핵심은 ‘모든 국민의 균등한 발전’이었다. 이는 첫번째 헌법부터 현행 헌법까지, 우리나라 헌법 전문에 드러나 있다.

“국민생활의 균등한 향상을 기하고 (...)”
-대한민국헌법 전문.

당시 임시정부 구성원들이 균등한 발전을 추구한 이유는 사회통합을 위해서였다. 임시정부는 독립국가를 세우고 지키기 위해서는 모든 국민이 잘 통합되어 있어야 한다고 여겼다. 통합을 위해서는 다른 무엇보다 이념 갈등과 계급 갈등을 예방해야 했다. 지나친 재산 격차가 공화국을 무너뜨린다고 이야기한 키케로처럼, 임시정부 구성원들도 통제되지 않는 불평등이 사회를 망가뜨린다고 여긴 것이다.

그렇다고 임시정부가 공산주의를 받아들인 것은 아니었다. 당시 임시정부 구성원들도 공산주의 혁명의 폐해를 잘 알고 있었다. 따라서 임시정부는 사적소유를 전면 부정하지 않으면서도 모든 국민을 균등하게 발전시킬 수 있는 중도노선을 찾아야 했다. 그것이 바로 사회국가원리였다.

실제로, 유럽에서도 사회국가라는 개념은 갈등을 봉합하고 강한 나라를 만들려는 과정에서 나타났다. 19세기 유럽은 대혼돈이었다. 산업화가 진행되면서 전통을 지키려는 귀족과 이윤을 극대화하려는 자본가, 생존을 보장받으려는 노동자가 대립했다. 이런 상황을 보고 많은 사상가들이 계급 갈등을 방치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공유했다. 이미 갈등하고 있는 계급들이 자발적으로 화해하기를 기다릴 수는 없으니, 국가가 나서야 했다. 이런 생각의 흐름이 사회국가를 낳았다. 다시 말해, 사회국가는 곧 사회통합이었다.

당시 제헌의원들이 유럽의 사상을 고스란히 받아들였다는 의미는 아니다. 제헌의원들은 유럽에서 건너 온 사상을 우리 식으로 해석하고 응용하려 했다. 제헌의원들은 유럽 사상가들과는 다른 맥락에서 출발해서 비슷한 결론에 도달한 셈이다.

- 떳떳하게 제헌절을 맞이하기 위해.

지금 봐도 급진적인 조항들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과연 우리나라가 비좁은 의미의 자유민주주의 국가로 출발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제헌의원은 물론 임시정부 구성원들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사회국가는 보수적인 의미의 자유민주주의와 어울리지 않는다. 우리나라가 사회국가가 되기 위해서는 지금처럼 무분별하게 예산을 아끼려고만 해서는 안 된다. 온갖 사회문제가 쌓여 있지만 어느 것 하나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는 국가는 사회적이라고 할 수 없다. 다시 말해, 우리는 75년 째 헌법 가치를 골고루 계승하지 못하고 있다. 이렇게 된 데에는 여러 원인이 있겠지만, 우리나라의 뿌리에 대한 오해도 분명 포함될 것이다.

제헌절이 돌아올 때마다 모든 정권은 제헌헌법의 정신을 계승할 것이라고 이야기해 왔다, 하지만 어느 정권도 자의든 타의든 지금 우리에게 가장 절실한 헌법 정신인 사회국가원리에 충실하지 않았다. 그 대가가 걷잡을 수 없는 인구 감소와 사회적 불신, 높은 자살률이라는 불명예다.

그 옛날 중국에서 조조는 천자를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자기 권력을 키웠다. 천자의 명령에 따른 게 아니라, 천자의 명령을 이용한 것이다. 우리나라 헌법은 조조에게 사로잡힌 천자나 다름 없다. 천자처럼, 우리나라 헌법도 명분으로 이용될 뿐이다. 이제는 특정 헌법 조항이 아니라 모든 헌법 정신을 골고루 따라야 한다. 그래야 제헌절을 떳떳하게 기념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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