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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완 Dec 16. 2022

우리나라도 '사회적인' 국가였습니다.

헌법 초안을 마련한 유진오 선생이 증언합니다.

히틀러가 권총으로 자기 머리를 쏴버린 후, 베를린을 정복한 스탈린은 소련 본토를 지키기 위한 완충지대를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어수선한 동유럽과 서북아시아를 빠르게 공산화하고, 동아시아까지 공략했습니다. 몽골, 중국, 캄보디아, 베트남, 그리고 한반도 북부까지, 제국주의와 빈부격차에 신음하던 동아시아 전역에 붉은 깃발이 내걸렸습니다.

이런 와중에, 동아시아 모서리에 있는 우리나라는 큰 빈곤과 혼란을 겪으면서도 공산주의 세력에 전복당하지 않았습니다. 북한의 갑작스런 침공 탓에 위험할 뻔 했지만, 여러 우방으로부터 도움받아서 기어코 자유민주주의를 지켰습니다. 지금은 신정국가와 독재국가로 가득한 아시아에서 자유민주주의를 부드럽게 움직이는 국가 중 하나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런 역사를 자랑스러워 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구체적으로 무엇을 지켰는가를 두고 논란이 조금 있습니다.

주로 보수적인 사람들은 자유민주주의를 굉장히 비좁게 받아들입니다. 보수적인 관점에서 자유민주주의란, 정부가 높은 세금을 거둬서 사회 안전망을 갖추는 일보다 기업인이 자유롭게 투자하고 부자가 마음껏 돈을 쓰게 하는 일을 우선시하는 정치 질서입니다. 이런 일을 조금 억제해야 하는 재분배, 복지국가, 격차 완화는 자유민주주의와 어울리지 않습니다. 다시 말해, 우리가 지키려고 한 자유민주주의는 곧 자유로운 경제활동을 가장 먼저 보호하는 야경국가입니다.

하지만, 우리나라가 정부를 수립하기 전부터 받아들인 자유민주주의는 저렇게 비좁지 않았습니다. 자유민주주의 대한민국은 분명 야경국가로 출발하지 않았습니다. 3.1 운동으로 독립을 결의하고 임시정부를 거쳐서 헌법 제정과 정부 수립을 완수할 때까지, 우리나라는 분명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받아들이는 동시에 사회문제에 개입하고 사회적 약자를 보호해서 사회정의를 실현하는 국가, 즉 '사회국가'를 추구했습니다. 다시 말해, 우리나라는 '사회적인' 자유민주주의 국가로 출발했습니다.

이런 사회적인 자유민주주의를 상징하는 인물이 바로 현민 유진오 선생입니다. 유진오 선생은 우리나라의 헌법 1호(제헌 헌법)를 작성할 때 그 초안을 마련한 분입니다. 유진오 선생이 활동하던 시기에 이야기된 헌법 구상을 보면, 정말 우리 독립영웅들이 지금의 우리처럼 자유민주주의를 비좁게 받아들였는지 의문이 들 수 밖에 없습니다. 유진오 선생과 당시 여러 사상가들은 우리나라를 비좁은 자유민주주의 국가로 만들지 않았습니다.

비록 유진오 선생 한 사람의 생각이 고스란히 제헌 헌법으로 구현된 것은 아니지만, 그 영향력을 무시할 수 없다는 점을 생각해 보면, 유진오 선생은 우리나라의 뿌리를 찾을 때 꼭 거쳐야 하는 법사상가입니다. 유진오 선생은 대한민국이 사회적인 자유민주주의 국가로 출발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핵심 증인입니다.

[대한민국의 경제질서는 모든 국민에게 생활의 기본적 수요를 충족할 수 있게 하는 사회정의의 실현과 균형있는 국민경제의 발전을 기함을 기본으로 삼는다. 각인의 경제상 자유는 이 한계 내에서 보장된다.] - 대한민국헌법 제1호(제헌 헌법), 제84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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