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유럽은 세상에서 가장 큰 사회과학 실험실입니다. 자본주의가 유일한 경제질서인 세상에서, 북유럽 국가는 개인이나 기업 단위가 아니라 국민국가 단위로 국제 경쟁과 경기 변동에 대응하는 방법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해가 바뀔 때마다 지속가능성을 의심받았지만, 북유럽 국가는 결과로 보여 줬습니다. 완벽하지는 않지만, 북유럽은 아직도 세상에서 가장 안정적이고, 자유롭고, 유대감 넘치는 곳입니다.
물론 북유럽이 개척한 길을 모두가 따를 수는 없습니다. 인구나 자원의 문제가 아닙니다. 모든 북유럽 국가가 처음부터 적은 인구와 많은 자원의 혜택을 입은 것은 아닙니다.
문제는 가치관입니다. 북유럽 신화를 보면 알 수 있듯, 북유럽 사람은 예로부터 개인 간의 계약을 절대적인 가치처럼 여겼습니다. 여기에 성직자를 중심으로 한 집단적인 종교생활보다 개인의 믿음을 강조하는 루터교가 들어오면서, 북유럽에서는 근대적인 개인주의가 빠르게 자리잡았습니다. 하지만 북유럽은 개인 단위로 흩어지지 않았습니다. 북유럽 사람은 각자의 영역을 존중하는 동시에 서로에게 의존했습니다. 중세시대부터 지역 단위로 교회가 주도하는 상호부조 제도를 활용해 왔고, 이는 고스란히 지방자치와 복지국가의 토대가 되었습니다. 다시 말해, 북유럽에서는 개인주의와 집단주의가 공존하고 있습니다.
또 다른 문제는 정부에 대한 신뢰입니다. 북유럽 사람은 세계에서 가장 전문성 있고, 유연하고, 깨끗한 정부를 만들었습니다. 북유럽의 유능한 정부는 신앙심을 대체할 정도로 북유럽 사람을 안심시키고 있습니다. 이런 성과는 뉴질랜드 정도를 제외하면 세계 어느나라도 이뤄내지 못한 것입니다. 북유럽 모델은 강력하지만 충분히 감시받는 정부를 전제합니다. 그런 정부를 만들려면 그만큼 시민 의식과 크고 작은 공동체가 발달해야 합니다. 우리나라는 정확히 그 반대로 가고 있고, 그래서 북유럽 모델을 따라하기 어렵습니다.
북유럽 모델은 보편적이지 않습니다. 하지만 사회가 자본주의를 통제할 수 있다는 점, 또는 사회적 가치에 부합하도록 자본주의를 다시 조직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줍니다. 북유럽 모델을 있는 그대로 따라할 수는 없고, 그럴 필요도 없지만, 적어도 자유방임 자본주의가 유일한 대안이라는, 역사적 근거도 없는 헛소리에 대응할 근거로 북유럽 모델을 제시할 수는 있습니다. 북유럽의 오로라는 아직도 밝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