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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완 Aug 29. 2023

괴로워도 하는 수 없습니다.

저는 글을 써야 합니다.

글을 쓰다가 막힐 때 문득 제가 사회에 짐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저는 학력도, 경력도, 기술도 없습니다. 가진 거라고는 글감으로 쓰려고 천장까지 쌓아 둔 책더미와 누구나 읽기 쉬운 글을 쓰려고 연마한 잔재주 뿐입니다. 그런데 그마저도 제대로 기능하지 못하면, 저는 주변 사람들에게 기생할 수 밖에 없습니다. 집안 상황도 불안하고 나라 상황도 좋지 않지만, 글이 막히는 순간에는 사회의 떳떳한 일원이 될 수 없다는 게 가장 괴롭습니다.


누군가는 사람이 존재 자체로 소중하다며 위로하겠지만 그건 현실 도피입니다. 애덤 스미스가 말한 것처럼, 사람은 사랑받을 자격이 있다고 여길 때 행복합니다. 내가 잘 하는 일이 있어서 누군가가 나를 필요로 할 때, 내가 쉽게 대체할 수 없는 존재라고 인정받을 때, 사람은 비로소 소중한 존재가 됩니다. 중요함은 차등적입니다. 그냥 숨만 쉰다고 해서 소중하다면 세상에 누구도 소중할 수 없습니다. 저는 제가 소중한 존재인지 아직 모르겠습니다.


물론 주변에서 저를 찾는 사람이 없지는 않습니다. 지금도 더서울라이트의 대표에디터로 일하고 있고, 새로운선택 사무실로 출퇴근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제가 그 자리에 앉을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언제나 자리에 가장 적합한 사람이 자리를 차지해야 합니다. 그래야 모두에게 이익이 돌아갑니다. 주변에는 저보다 글을 잘 편집하고 정당 일에 보다 숙달된 사람이 많습니다. 제가 앉고 있는 자리는 그 사람의 것이어야 합니다.


이렇게 한숨 쉴 동안 기술이라도 공부하면 되지 않느냐고 되물을 수 있습니다. 저도 잘 알고 있습니다. 알고 있는데, 몸이 따라주지 않습니다. 저는 일반적이지 않은 경로로 살았습니다. 남들이 모의고사를 공부하고 자격증을 딸 때, 저는 집안 빚을 갚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하고 책에서 삶의 의미를 찾아다녔습니다. 이제와서 남들과 똑같은 길로 되돌아 간다면, 대체 얼마나 빨리 뒤쫓아야 할지 감도 안 옵니다. 겨우 따라잡는다고 해도, 스트레스에 예민하고 의지할 곳 없는 제가 남들과 똑같은 직장생활을 견딜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제가 글을 쓰기로 마음 먹은 건 글 쓰는 일에 환상이 있어서가 아닙니다. 지금 갖고 있는 상대적인 장점과 성격을 생각했을 때, 혼자 고민하고 그 결실을 표현하는 일이 제게 가장 어울립니다. 다른 장점을 키우고 성격을 바꾸는 방향도 가능하겠지만, 그런 과업에는 많은 시간과 예산을 소모해야 합니다. 그러고도 원하는 장점과 성격을 갖게 되리라는 법은 없습니다. 싸구려 자기계발서는 마음만 먹으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며 사람들을 채찍질하지만, 진지한 과학은 그렇게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제게는 글 뿐입니다.


어쩌면 제 자신에게 너무 엄격한 걸지도 모르겠습니다. 지금도 누군가에게는 대체할 수 없는 존재인데, 제가 이념의 잣대로 자신을 괴롭히는 걸지도 모르겠습니다. 제가 당장 사라진다고 해서 세상이 멈추지는 않겠지만, 누가 사라지든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제가 소중함의 기준을 너무 높게 잡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저는 만족할 수 없습니다. 글로 인정받아서 산업사회의 일원이 되었다고 당당히 이야기할 수 있기 전까지는, 제 자신을 소중한 존재라고 생각하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존재 자체로 소중하다며 발전을 멈추고 안락함을 찾는 사람은 무임승차자입니다. 제 이념에 어긋납니다. 당장의 괴로움에서 벗어나겠다고 이념을 버릴 수는 없습니다. 이념이라는 나침반마저 버리면, 저는 완전히 미아가 되어 버립니다. 어떤 기회가 찾아오든, 저는 글쟁이가 되고 싶습니다. 그게 소원입니다.


어딘가에 신이 계시다면 한 말씀만 하소서, 제가 곧 나으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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