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방부는 이성을 잃었다.
합리적이라면 저렇게 이야기하지 않을 것입니다.
백선엽 장군은 만주군에서 복무했다. 직접 독립운동가를 사냥했는가에 대해서는 따져 볼 여지가 있지만, 우리나라의 독립을 부정하는 세력에 협력했다는 점은 분명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백선엽 장군을 기려야 하는 이유는 6.25 전쟁에서 지울 수 없는 공적도 세웠다는 데에 있다.
그런데, 국방부는 '그럼에도 불구하고'가 통하지 않는 상황을 초래하고 있다. 홍범도 장군은 분명 볼셰비키였다. 조선 노동당도 아니도, 중국 공산당도 아닌, 종가집 소련 공산당 당원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 독립에 기여한 상징적인 군인이기 때문에, 박근혜 정부도 국군 잠수함에 홍범도 장군의 이름을 새겼다.
애초에, 홍범도 장군은 북한 정권 수립이나 6.25 전쟁과 무관한 인물이다. 홍범도 장군은 광복 전에 사망했다. 공산주의자였지만, 광복 후에 대한민국을 존재부터 부정하려 했는지 알 수 없다. 남쪽이 먼저 대한민국이라는 이름으로 독자 정부를 세우기 전까지는 공산주의자도 대한민국을 세우기 위해 싸웠다. 심지어 북한도 처음에는 우리와 똑같은 태극기를 걸었다.
국방부는 육사가 자유민주주의 정체성을 가진 군인을 기르는 곳이라는 점을 강조하지만, 정작 자유민주주의란 무엇인지 설명할 능력은 없어 보인다. 우리나라는 분명 자유민주주의 국가로 출발했다. 하지만 그 자유민주주의는 조봉암 선생과 같은 민주적인 사회주의자까지 포괄할 수 있을 정도로 담대했다. 정치철학에서도 자유민주주의를 우리나라 보수처럼 비좁게 정의하지 않는다.
게다가 자유민주주의 국가가 비좁은 의미의 자유민주주의자만 기려야 할 이유는 어디에도 없다. 백선엽 장군과 이승만 대통령, 박정희 대통령 등도 자유민주주의에 충실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거부할 수 없을 만큼 많은 유산을 남긴 탓에, 세 사람을 역사에서 지울 수 없을 뿐이다. 홍범도 장군도 마찬가지다.
만약 홍범도 장군이 볼셰비키라서 흉상조차 허락되지 않는다면, 백선엽 장군도 만주군이라서 흉상조차 세워서는 안 된다는 논리를 피할 수 없다. 과거 부정적인 경력만 따지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가 통하지 않는 상황을 만든다면, 백선엽 장군 뿐만 아니라 이승만, 박정희 대통령도 지킬 수 없다.
정율성처럼 명확히 대한민국을 부수려 한 사람이 아닌데 공산주의자라는 이유로 배제한다면 논리적 모순에 빠질 수 밖에 없다. 이성적인 사람은 자기 주장에 포함된 논리적 모순을 빠르게 깨닫기 마련이다. 가장 이성적이어야 할 국방부는 가장 비이성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성을 잃은 미치광이가 군인을 양성한다면 가장 먼저 무너지는 건 우리 안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