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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완 Aug 29. 2023

문신할 자유는 없을 수도 있다.

자유 한 마디로 논쟁을 끝낼 수는 없다.

몇 년 전까지 일본에서 문신한 사람은 목욕탕에 갈 수 없었다고 한다. 문신을 보고 야쿠자나 불량배를 떠올리는 사람이 많았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문신한 외국인 관광객이 늘고 일본인도 유행처럼 문신을 그리는 탓에 문신한 사람을 거부하는 목욕탕이 줄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문신을 보는 관점이 완전히 바뀐 건 아닌 듯하다.


우리나라에서도 문신은 좋은 대접을 받지 못한다. 2020년에는 한 병무청 공무원이 얼굴과 목에 문신을 했다가 3개월 동안 감봉되었다. 최근 서울의 헬스장과 호텔에는 위협적인 문신을 그린 사람을 거부하는 '노타투존'이 생겼다. 그만큼 문신을 공격적으로 받아들이는 사람이 많다는 의미일 것이다.


우리는 문신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여기서도 개인의 자유 한 마디로 논쟁을 끝내려는 사람이 있을 테지만, 문제는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나라에서 문신은 욕설처럼 상대에게 공격적인 의미를 전달하는 기호로 기능한다. 노태우 정부가 범죄와의 전쟁을 선포하기 전부터, 문신은 조직폭력배의 일원임을 과시하는 상징으로 쓰였고 지금도 마찬가지다. 이런 기억을 공유하는 사람들에게 문신은 안전한 사람과 공격적인 사람을 구별하는 표식이다. 과장을 보태자면, 많은 사람에게 온몸을 덮는 문신은 살인예고글과 다를 바가 없는 셈이다.


문신으로 사람을 판단하는 심리를 편견이라고 비판할 수 있지만, 사람은 편견 없이 살 수 없다. 사람은 누구나 당장 알아보기 쉬운 특징으로 다른 사람을 구별하면서 편견을 만든다. 옛날에는 옷차림을 보고 신분을 파악했고, 이런 편견은 지금도 어느정도 통한다. 언론인 앞에 티셔츠 차림으로 나타나는 정치인을 보기 힘든 이유가 여기에 있다. 공공이익을 위협하고 평등한 자유 원칙을 심하게 무너뜨리는 편견은 없애야 겠지만, 모든 편견을 없애려는 시도는 비인간적이다.   


게다가 내 몸에 문신을 그릴 자유를 다른 자유보다 우선시해야 할 이유가 마땅치 않다. 사업자는 공공이익을 침해하지 않는 선에서 자신의 이익을 위해 영업장을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 만약 문신한 손님을 받는 일이 이익에 방해가 된다면, 사업자는 문신한 사람을 받지 않을 수 있어야 한다. 이는 재산권의 영역이다. 그리고 문신을 그릴 자유가 재산권보다 중요하다고 보기는 어렵다.  


같은 논리로 노키즈존도 허용된다고 우려할 수 있지만, 노키즈존과 노타투존은 엄연히 다르다. 노키즈존은 저출생 사회에서 아동 혐오를 조장해서 공공이익을 침해한다고 볼 수도 있고, 엄연히 한 개인으로 대우받아야 하는 유아를 그저 유아라는 이유로 차별하는 일로 볼 수도 있다. 문신은 선택 사항이지만 유아기는 선택 사항이 아니라는 점에서, 노키즈존이 더 큰 문제다. 물론 정부가 법으로 금지해야 할 만큼 노키즈존이 공공이익을 침해하는가에 대해서는 보다 신중하게 따져봐야 한다.


한 걸음 나아가서, 자유의 이름으로 문신을 금지하는 일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자유란 그저 간섭받지 않는 상태를 의미하지 않기 때문이다. 자유주의 정치철학자 이사야 벌린이 말한 것처럼, 간섭받지 않을 자유는 여러 자유 중 하나일 뿐이다. 매우 중요하지만, 유일하게 중요하지는 않다. 이사야 벌린을 포함한 자유주의 철학자 상당수는 자유를 공공이익과 도덕보다 중요하다고 여기지 않았다. 자유는 매번 다른 가치와 타협해야 한다. 그래야 모두가 자유로울 수 있다. 그래서 매우 자유로운 나라인 독일은 나치당의 상징인 갈고리 십자가를 논리적 모순 없이 철저히 규제할 수 있다.


문신도 엄연히 표현이고, 따라서 다른 표현처럼 사회통념에 따라 규제될 수 있어야 한다. 시간이 흘러서 문신으로 안전한 사람과 위험한 사람을 전혀 구별할 수 없게 된다면, 문신으로 사람을 구별하는 일을 구태로 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사람이 문신을 그리는 이유, 그리고 실제로 문신을 과시하는 사람의 모습을 보면, 아직 우리나라에서 문신에 대한 두려움을 덜어내기는 어려워 보인다. 온몸에 문신을 그린 MZ 깡패가 활개치는 사회가 아닌가. 자유는 여러 의미를 가진 개념이고 언제나 타협의 산물이다. 따라서 자유 한 마디로 문신을 옹호할 수는 없다.


"(영국의 고전 철학자들) 그들은 자유를 다른 가치와 상충되는 만큼 제한할 태세가 되어 있었고, 심지어 자유 자체를 억제할 태세마저 갖추고 있었다."

- 이사야 벌린, 자유의 두 개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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