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세주도성장론이 틀린 이유.
지금 그럴 때가 아닙니다.
내년 정부 수입이 13.6조 원이나 줄었다. 그나마 세금 외 수입이 크게 늘어서 이정도이지, 세금 수입은 무려 33조 원이나 줄었다. 경제성장이 저조한 상황에서 정부가 무분별하게 감세한 탓이다. 지출은 늘었는데 수입은 줄었다. 건전재정이란 대체 무엇일까.
윤석열 정부는 경제가 성장하면 세율이 줄어도 세액이 늘어날 것이라고 항변하지만, 정작 성장 대책이라고 내놓은 것은 감세를 통한 민간 투자 촉진 뿐이다. 감세가 성장을, 성장이 세수 증대를 이끈다는 뻔한 이야기다.
물론 윤석열 정부의 '감세주도성장론'에 아주 근거가 없는 것은 아니다. 다른 조건이 같고 자본 이동이 자유롭다면, 투자자는 세금을 보고 투자 여부를 결정할 것이다. 이렇게 보면 감세는 곧 투자 증대이고, 투자 증대는 곧 경제성장이다.
문제는 지금 다른 조건도 엉망이고 자본 이동도 자유롭지 않다는 것이다. 최근 경제대국들은 해외로 나간 자본을 되찾기 위해 무역 장벽을 높이고 기업보조금을 적극 활용하고 있다. 미국이 시작했고, 유럽연합이 뒤따르고 있다. 그 규모는 우리나라 1년 예산을 아득히 뛰어넘는다.
게다가 물가 상승 탓에 금리도 계속 오르고 있다. 보통 금리가 오르면 시중은행 예금이자가 오르기 때문에, 자본이 은행에 묶일 수 있다. 대출이자도 함께 늘어나는 만큼, 사람들은 큰 돈을 빌려서 위험을 감수하려 하지 않을 것이다.
다시 말해, 지금은 기업이 고작 세금만 보고 투자를 결정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더 높은 세금을 감내하더라도 미국 연방정부나 유럽 각국으로부터 보조금을 받는 편이 나을 수 있고, 세금이 낮아도 높은 이자 때문에 투자를 멈춰야 할 수 있다. 내년 예산안을 보면, 우리나라도 결국 정부보조금으로 투자를 촉진하고 있다.
감세는 만능이 아니다. 이대로 감세만 반복한다면, 정부는 경제성장도, 재정건전성도, 자유를 위한 연대도 챙길 수 없을 것이다. 무엇보다, 지금은 정부가 더 적극적으로 투자해야 할 때지, 물러설 때가 아니다. 택시비가 천 원이던 시절에도 먹힌 적 없는 재정 정책은 모두에게 짐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