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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완 Aug 31. 2023

퇴화하는 한국 복지제도

내년 예산안 탓입니다.

단돈 천 원. 한덕수 총리가 생각하는 요즘 택시비다. 너무 고독해서 택시 타고 나갈 일이 없는 건 아닐테니, 저 한 마디로 한덕수 총리의 현실 감각이 드러났다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2024년 정부 예산안을 보면 총리의 현실 감각만 문제인 건 아닌 듯하다. 내년 정부 예산은 656.9조 원이다. 올해보다 18.2조 원 늘었다. 그 중에서 노인 일자리 예산은 4천억 원이 늘었고, 기초연금은 1조 6천억 원이나 늘었다. 그런데 교육 예산은 6.9조 원 씩이나 줄었다. 직업훈련 예산도 3천억 원이나 줄었고, 고용서비스 예산도 1천억 원이 줄었다.


언뜻 보면 다른 곳에서 돈을 아껴서 시급한 약자에게 집중했으니 좋은 일이 아니냐고 할 수 있다. 물론 초고령화 시대에 맞춰서 노인 복지를 강화하는 일은 필요하다. 하지만 절대적 약자만 돕는다는 선택적 복지관은 가뜩이나 후진적인 우리나라 복지제도를 더 후진적으로 만들 것이다.


우리나라 복지제도는 편중되어 있다. 예산은 주요국 중에서 가장 적은데, 그나마도 국민의료보험과 기초연금 등, 보건, 노령 부문이 6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나머지를 자잘한 복지제도들이 나눠갖고 있다. 특히 사회초년생과 실업자를 돕는 제도가 줄곧 부족한 예산을 배당받고 있다.


다시 말해, 우리나라 정부는 아파서 병원에 가는 사람과 나이들어서 일할 수 없는 사람에게 주로 돈을 쓰고, 취업 경쟁력을 키우지 못했거나 학자금 대출에 허덕이는 사람에게는 상대적으로 무관심하다.


정규직 노동자가 경제의 주축이던 시대에는 이런 사회보험 위주의 복지제도도 잘 통했다. 다수가 안정된 일자리와 임금을 보장받았으니, 정부는 은퇴나 질병처럼 혼자 감당하기 힘든 위험을 공략하는 데에 집중할 수 있었다. 물론 우리나라는 고도성장기에도 충분한 사회보험을 갖추지 않은 탓에 지금도 은퇴한 노동자들이 고생하고 있지만, 적어도 선진국에서는 노동자가 안정된 연금을 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1980년대부터 경제 환경이 달라졌다. 국제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거의 모든 나라가 노동시장을 유연화하기 시작했다. 안정된 일자리는 줄고, 불안정한 일지리가 급증했다. 취업 난이도도 올라갔다. 과거에는 저학력자도 취업 자체는 어렵지 않았지만, 이제는 박사 학위를 받은 사람도 일자리를 찾기 어렵다. 노동시장은 매우 위험해졌고, 노동시장에 진입하는 비용도 크게 증가했다.


이런 상황에서 국민의료보험 같은 사회보험만 강화하면, 다수가 복지제도에서 소외된다. 사회보험도 어디까지나 보험이다. 보험료를 낼 수 있고, 특정 위험을 맞딱드린 사람에게만 혜택을 준다. 우리나라가 운영하는 4대 보험은 과잉경쟁 탓에 월급의 태반을 사교육비에 쏟아야 하는 사람, 집안사정 탓에 공부를 마치지 못해서 경쟁력을 잃은 사람, 산업구조가 바뀌어서 새 직장을 찾아야 하는 사람에게 아무런 혜택도 주지 않는다.


다시 말해, 사회보험 위주의 복지제도는 넘어진 사람을 일으켜 세워줄 뿐, 애초에 넘어지지 않게 잘 달리는 법을 알려주지는 않는다.


덴마크와 독일 같은 복지 선진국은 새로운 경제 현실에 맞춰서 복지제도의 페러다임을 바꿨다. 정규직 노동자에게 보험서비스를 제공하는 데에 집중하던 복지제도를, 더 많은 사람의 경쟁력을 키우는 복지제도로 개선했다. 기존 복지제도가 개인이 시장경쟁에서 떨어져 나가고 나서 뒤늦게 수습하러 나섰다면, 새 복지제도는 개인의 인적자본을 개발해서 시장경쟁에서 떨어져 나가지 않게 예방한다. 이런 복지제도를 '사회투자정책'이라고 부른다.


사회투자정책의 대명사나 마찬가지인 덴마크는 적극적 노동시장 정책과 공교육에 엄청난 예산을 쏟는다. 2019년 기준으로, 덴마크는 GDP의 2% 정도를 적극적 노동시장 정책에 투자한다. OECD 평균은 0.7% 정도다. 또한 덴마크 정부는 고등교육(대학 등)에 들어가는 비용의 85%를 부담한다. 학비 부담이 큰 미국은 36% 수준이다.


우리나라도 2000년대에 사회투자정책이 논의되었고 실제로 여러 취업지원제도가 도입되었지만, 해외에 비하면 여전히 그 규모가 턱 없이 작다. 우리나라는 적극적 노동시장정책에 GDP의 0.4%만 지출한다. 덴마크의 5 분의 1, OECD 평균의 절반 수준이다. 우리나라 정부는 고등교육에 들어가는 비용도 38%만 부담한다. 나머지는 개인과 민간 재단의 영역이다. 즉, 우리나라에서 먹고 살려면 각자가 엄청난 돈을 들여야 한다.


이런 와중에 윤석열 정부는 교육 예산과 고용지원 예산을 축소시켰다. 다수 청년은 노동시장 입장료가 너무 비싸서 고통받고 있는데, 윤석열 정부는 이 문제를 거의 손대지 않았다. 이미 많은 비용을 치렀지만 취업하지 못한 청년 일부를 돕는 예산과 대학재정을 부양하는 예산을 키웠을 뿐이다. 작은 정부를 고집하면서 문제에 대응하려면 그럴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낡은 이념에 집착하는 바람에, 윤석열 정부는 후진적인 복지제도를 더 퇴화시킨 셈이다.


역사를 보면, 복지제도는 경제가 복잡해지면서 함께 성장했다. 대처 - 레이건 시대에도 예외는 아니었다. 우리나라는 빠르게 경제를 발전시켰지만 동시에 다소 무리하게 복지지출 규모를 억제해 왔다. 그 부작용이 바닥을 치는 출생률과 천장을 치는 자살률, 내일을 잃고 니트가 되는 청년과 끝 없는 경제 범죄다. 절대적 약자를 돕는 일은 필요하다. 하지만 거기서 멈춘다면 더 많은 사람이 절대적 약자로 전락하게 될 것이다. 지금은 정부가 보편적으로 지갑을 열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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