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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완 Sep 14. 2023

세상 모든 김정은 씨가 독재자는 아니다

조금 억울할 수 있는 공산주의'들'

수학은 정말로 사람을 아프게 한다. 뇌과학 연구자들에 따르면, 어떤 사람의 뇌에서는 수학 문제집을 펼칠 때마다 통증을 관장하는 부위가 활성화된다. 공부할 때마다 눈이 피로하거나 머리가 아픈 건 꾀병이 아니었던 셈이다.

같은 원리로 공산주의도 우리나라 사람을 기겁하게 한다. 그런데 내용이 아니라 공산주의라는 단어 자체가 문제인 듯하다. 아무거나 공산주의라고 불러도 사람들을 불안에 떨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세상에는 정말 다양한 공산주의가 있지만, 우리나라의 공산주의 공포증 환자에게 그런 사실은 중요하지 않아 보인다.

흔히 공산주의라고 하면 마르크스와 레닌, 김일성을 떠올리지만, 공산주의 가계도에서 이 세 사람은 막내뻘이다. 김일성의 경우, 공산주의자들 사이에서도 호적을 파야 한다는 이야기가 종종 나온다.

공산주의라는 말 자체는 프랑스 혁명 때에도 유행했다. 이념의 시작을 따지면 종교개혁 시대에 등장한 급진적인 기독교 공동체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그 당시 기독교 공산주의는 초기 기독교인들을 본받기 위한 도덕 운동이었다. 공산주의에 계급 독재나 전체주의가 첨가된 것은 비교적 최근 일이다.

저렇게 멀리 가지 않더라도, 요즘 공산주의자들을 보면 서로 얼마나 생각이 다른지 알 수 있다. 이웃나라 일본에는 1922년에 결성된 공산당이 여태 살아 있다. 최근 일본 공산당의 공약을 보면 급진적인 부자증세, 평화주의, 복지국가가 있을 뿐, 중국 공산당 같은 광신적인 민족주의와 1당 독재는 보이지 않는다. 실제로 일본 공산당은 호헌 세력으로 통한다.

서유럽 공산주의 정당들도 마찬가지다. 서유럽 공산주의자는 현대 자유민주주의를 이념 경쟁의 규칙으로 받아들인다. 무력으로 정권을 뒤엎고 언론을 폐지하는 게 아니라, 다당제 속에서 다수의 지지를 얻으며 사회를 바꾸려 한다. 이런 노선을 20세기부터 받아들인 탓에, 레닌으로부터 배신자 소리를 듣기도 했다.

자유민주주의는 굉장히 모호한 표현이지만, 기본 규칙을 어기지 않는 선에서 다양한 이념을 지지할 자유와 국가로부터 억울하게 처벌받지 않을 자유를 대체로 포함한다. 우리나라는 시작부터 자유민주주의 국가였다. 그런 우리나라가 공산주의와 싸운다고 선포하는 게 가능할까? 구체적으로 어디 사는 어떤 공산주의자를 잡겠다는 말인가?

스머프 마을 부럽지 않은 고맥락 사회라서 그런지, 우리나라는 단어를 함부로 쓰는 경향이 있다. 상대가 오해하지 않도록 명확하게 이야기하기 보다, 내가 어떻게 표현해도 상대가 잘 알아듣기를 바란다. 모든 곳이 분열된 시대에 이런 고맥락 언어는 더 이상 설 곳이 없다.

공산주의와 싸우고 싶다면, 적어도 누구랑 싸우려고 하는지 정도는 밝혀야 한다. 막연하게 공산주의와 싸우자는 말은 세상 모든 김정은 씨를 체포하자는 의미일 수 밖에 없다. 자유민주적인 사회주의자가 그런 반자유민주적인 일에 동참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적을 너무 광범위하게 지정하면 손해 보는 건 아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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