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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완 Dec 30. 2022

자유의 이름으로 동성혼에 반대할 수는 있습니다.

문제는 자유가 아니라 도덕입니다.

동성애 확산에 저항하는 사람들은 우선 한 가지 문제에 답해야 합니다. 그러지 않으면 설득력을 가질 수 없을 것입니다.

자유는 크게 두 가지로 나뉩니다. '도덕적인 선택지를 고를 자유'와 '타인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는 선택지를 고를 자유'.

앞 쪽은 도덕적 자유라고 불립니다. 도덕적 자유 개념은 타인의 간섭이 없더라도 비도덕적인 선택지를 고르는 행위를 자유로 인정하지 않습니다. 존 로크나 보수주의자, 사회적 자유주의자가 도덕적 자유를 옹호합니다. 물론, 세 사람은 대체로 서로 다른 도덕 잣대를 갖고 있습니다.

뒤 쪽은 소극적 자유라고 불립니다. 소극적 자유 개념은 타인에게 간섭받지 않고 타인에게 간섭하지 않는 모든 행동을 자유로 규정합니다. 로버트 노직 같은 자유지상주의자가 소극적 자유를 좋아합니다. 좌파 중에는 경제를 제외한 나머지 영역에서만 소극적 자유를 옹호하는 사람도 많습니다.

흔히 소극적 자유와 적극적 자유를 주로 비교하지만, 자유의 두 개념을 유행시킨 이사야 벌린이 말한 것처럼, 소극적 자유와 적극적 자유는 수 많은 자유 개념 중 극히 일부일 뿐입니다. 그리고 도덕적 자유는 소극적 자유와도 다르고, 적극적 자유와도 다른, 또 다른 자유 개념입니다.

우리나라에서 도덕적 자유와 소극적 자유가 가장 크게 충돌하는 영역이 동성애 문제입니다. 흔히 우리나라 자유주의자는 자유의 이름으로 동성혼에 반대하고 동성애 관련 콘텐츠를 규제하자는 주장이 모순된다고 여기지만, 이는 자유 개념을 소극적 자유로만 이해하기 때문입니다.

도덕적 자유의 관점에서 보면, 그리고 동성애가 비도덕적이라고 믿는 사람의 관점에서 보면, 자유의 이름으로 동성애를 억압하는 것은 전혀 모순되지 않습니다. 저는 기독교 윤리를 전제로 자유주의 사상을 펼친 존 로크 역시 동성애에 긍정적이지 않았으리라고 봅니다.

문제는 우리나라에서 도덕적 자유를 근거로 동성애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경제 문제에서는 기업인의 소극적 자유만 이야기한다는 점입니다.

원래 도덕적 자유 개념을 옹호한 사상가들은 경제 영역에서도 도덕의 잣대를 엄격하게 들이댔습니다. 로크는 기독교 윤리에 따라 소유권에 제한을 두었고, 가톨릭 교회나 장 칼뱅도 비도덕적인 경제활동을 규제하는 일에 적극 나섰습니다. 실제로, 기독교 사회교리에는 해서는 안 될 경제활동에 대한 내용이 반드시 포함되어 있습니다. 특히, 고리대금업은 비기독교적 행위의 대명사였습니다.

그런데, 도덕적 열정을 갖고 동성애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유독 경제활동에 대해서는 지나치게 관대한 모습을 보입니다. 과연 이들의 도덕관에는 '부당한 경제활동'이라는 개념이 없는 걸까요? 이들이 주장하는 '도덕'은 구체적으로 무엇일까요? 그 도덕이 도덕적인 이유는 무엇까요?

다시 말해, 자유의 이름으로 동성애 확산에 저항하는 사람들의 가장 큰 문제는 자유 개념을 잘못 쓴다는 점이 아니라, 무슨 도덕관을 따르는지 모호하다는 점입니다. 기독교 윤리를 따른다면, 경제활동에서도 기독교 사회교리를 엄격히 따라야 할 것입니다. 전통 유교 윤리라도 마찬가지입니다. 유교는 단 한 번도 상인들에게 무한히 관대한 적이 없습니다.

동성애 확산에 저항하는 사람들은 동성애를 혐오하는 동시에 소득 양극화나 노동착취에 눈을 감으라고 가르치는 도덕관이 대체 무엇인지, 그 도덕관이 왜 정당한지 명확히 밝혀야 합니다. 그러지 않으면, 자신들만의 도덕 직관에 세상을 맞추려 한다는 의혹을 피할 수 없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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