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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완 Jan 05. 2023

사회주의자는 원래 평등보다 형평을 좋아했습니다.

사회주의는 평등주의가 아니었습니다.

사회주의자는 크게 '잘 나누자는 쪽'과 '잘 만들자는 쪽'으로 나뉩니다. 보다 구체적으로 이야기하자면, 사회주의자는 소득이나 권력을 보다 평등하게 분배하는 데에 무게를 두는 '분배주의자'와 생산력을 극대화하는 데에 무게를 두는 '생산주의자'로 나뉩니다.

최근에는 분배주의자가 사회주의의 주류가 되었습니다. 어디를 가든지, 분배주의자는 통계에 나타나는 모든 격차를 사회악으로 규정하고 맹목적인 평준화를 요구합니다. 소득과 참정권, 심지어 길바닥에서 넘어질 확률까지 동등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주로 공산주의와 사회주의를 구별하지 못하거나, 인간을 빈 석판처럼 보는 분배주의자들이 저런 경향을 강하게 드러냅니다.

그 결과, 사회주의는 고학력 지식인이나 사회운동가들의 지적 유희로 전락해 버렸습니다. 형평성을 목숨처럼 아끼고 무임승차자를 혐오하는 것이 인간의 생존을 도운, 가장 오래된 전통이지만, 분배주의자는 이런 전통을 전혀 존중하지 않습니다. 자연히, 민중해방을 외치는 사회주의자가 민중에게 외면당하는 사태가 벌어질 수 밖에 없습니다.

백 년 전, 아니 오십 년 전까지만 해도, 사회주의가 이렇지는 않았습니다. 원래 분배주의자는 주류가 아니었습니다. 20세기 독일의 헌법학자이자 사회민주주의 사상가인 헤르만 헬러는 사회주의는 보편적인 평등주의가 아니라고 단호히 못박았습니다. 프리드리히 엥겔스 역시 계급이 초래하는 불평등을 넘어서 나머지 영역도 평등해야 한다는 주장을 부조리하다고 이야기했습니다. 앙리 생시몽이나 샤를 푸리에, 에드워드 벨러미 같은 사회주의의 선조들도 평등한 분배가 아니라 사회적 기여에 따른, 형평 있는 분배를 요구했습니다.

물론, 사회주의자가 불평등에 무관심해야 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생산주의자들도 부당한 계급 지배를 초래하는, 심각한 불평등을 옹호하지는 않았습니다. 특히, 생시몽이나 벨러미 같은 생산주의자는 능력 있는 사람에게 경제를 맡겨야 한다고 이야기했지, 부모로부터 재산을 상속받은 사람에게 경제를 맡겨야 한다고 이야기하지 않았습니다. 상속권은 거의 모든 사회주의자의 주적이었습니다.

다만, 인류가 공유해 온 정의의 기본 의미, '각자에게 각자의 것을' 정신을 잊어서는 안 된다는 뜻입니다. 제아무리 가족이라고 해도, 다 큰 성인을 마냥 먹여 살려주는 일을 달가워하지는 않습니다. 사회 전체가 참여하는 조별 과제는 실패할 것입니다. 무임승차자는 배제되어야 합니다. 일할 수 있는 사람은 일해야 하고, 일한 만큼 보상받아야 합니다. 원래 사회주의자는 그런 세상을 바랐습니다. 사회주의자는 생산주의 전통을 외면하지 말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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