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완 Jan 09. 2023

종교가 일상에서 사라지면 어떻게 될까요?

썩 좋지 않은 일이 일어날지도 모릅니다.

하버드대학교의 조지 베일런트는 천국을 믿는 사람이 정서적으로 더 건강하다고 이야기한 적이 있습니다. 천국이 있다고 긍정적으로 전망하는 사람은 덜 우울하다는 겁니다.

사람은 예측 기계이고, 예측하고 싶어하는 범위에는 '죽음 이후'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오랫동안 천국이라는 매력적인 전망을 제시해서 죽음 이후에 대해 긍정적으로 예측하도록 이끌어 온 것은 다름 아닌 종교입니다. 철학이나 과학이 죽음 이후에 대해 종교만큼 긍정적인 이야기를 해줄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스토아철학이나 불교처럼 현재에 집중하며 사는 법을 연습할 것을 이야기하는 사상도 있지만, 그런 연습이 죽음 이후에 대해 궁금해하는 마음을 온전히 잠재울 수 있을지는 아직 확실하지 않습니다. 마음 한 켠에 어떤 긍정적인 전망이 없다면, 현재에 집중하는 일도 어려울지 모릅니다.

저는 종교의 영향력을 크게 제한하는 세속주의 정책이 사실상 무신론을 장려하는 것이라고 봅니다. 실제로, 세속주의가 확산되는 곳일수록 종교인의 비율이 매우 낮아지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터키처럼 세속주의와 이슬람주의가 대립하는 경우도 있지만, 그 대립 역시 세속주의가 이슬람 인구를 줄이고 무신론을 퍼뜨린다는 예측 탓에 일어나는 일일 것입니다.

물론, 저 역시 종교를 반드시 보호해야 한다는 쪽으로 기운 것은 아닙니다. 다종교 사회인 우리나라에서는 구체적으로 어떤 종교를 보호해야 하는가부터 난제입니다. 종교를 직접 보호하기 보다 생활을 보호하면, 각자가 기본질서를 흔들지 않는 선에서 자유롭게 믿고 싶은 사후 전망을 믿을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다만, 제 마음 한 구석에 무신론이 대세가 된 사회가 영 좋지 않은 방향으로 흘러갈 것이라는 막연한 불안감이 있습니다. 사람에게 죽음만큼 불안감을 일으키는 일은 없을 겁니다. 무신론이 확산되면, 그 불안감을 잊기 위해 지나친 자기방어 행동에 나설 수도 있습니다. 저는 미국에서 기독교 근본주의가, 유럽에서 정치적 극단주의가 확산되는 데에는 무신론 문화도 크게 한 몫하고 있다고 추측하고 있습니다.

이런 일을 예방하려면, 사회전체를 하나로 묶어주고 모두가 사후에 대해 자연스럽게 긍정적으로 전망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종교적 문화가 필요하지 않은가 싶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국가가 모든 것을 기록하고 유공자를 기리는 데에 힘을 쏟아서 '시민종교'를 창출하는 방안도 생각 중입니다. 우리에게는 단순히 '각자 자유롭게 믿을 권리'를 넘어서서 성장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종교적 가치를 익힐 수 있는 종교 문화가 필요할 수도 있습니다.

제 마음 속에는 특정 종교가 정치와 과학까지 넘보지 못하도록, 세속주의 정책이 필요하다는 믿음도 있지만, 역으로 그런 세속주의 정책이 무신론 문화를 퍼뜨려서 궁극적으로는 더 극단적인 형태의 종교를 퍼뜨릴지도 모른다는 불안감도 있습니다. 때문에, 저는 세속주의와 무신론의 확산을 마냥 긍정적으로 바라볼 수 없습니다.

작가의 이전글 사회주의자는 원래 평등보다 형평을 좋아했습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