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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완 Jan 11. 2023

일해도 불행한 나라

정말 노력하면 잘 살 수 있을까요?

북유럽과 우리나라의 연령별 상대빈곤율 보면, 눈에 띄는 차이점이 하나 있습니다.

북유럽에서는 나이가 들수록 사람들이 빈곤에서 벗어나는 경향을 보입니다. 반면, 우리나라에서는 나이가 들수록 사람들이 급격히 빈곤해집니다. 주로 직장을 떠나는 나이대인 66세 - 75세 인구의 빈곤율을 보면, 2018년 기준으로 덴마크는 2.6%인데, 우리나라는 무려 34.6%입니다. 마치 우리나라 사람들은 은퇴하고 여생을 즐기는 게 아니라 은퇴하는 순간 모든 것을 잃는 것처럼 보입니다.

통계를 조금 더 자세히 보면, 북유럽은 아동 - 청소년 인구(18세 이하)의 빈곤율이 매우 낮은 편입니다. 그리고 한창 공부하며 사회 진출을 준비할 시기를 맞이하면(18 - 24세) 빈곤율이 급격히 올라갑니다. 어찌보면 이 시기는 빈곤한 게 당연합니다. 이제 막 일자리를 찾을 시기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취업하는 순간부터(25 - 40세) 빈곤율이 확 떨어지고, 자리를 잡고 난 이후부터는(40세 이상) 빈곤율이 세계에서 가장 낮아집니다. 심지어 은퇴하는 시기에도(66 - 75세) 빈곤율은 계속 떨어집니다.

우리나라는 반대입니다. 우리나라는 아동 - 청소년 인구의 빈곤율이 북유럽의 세 배 수준입니다. 그만큼 출발선이 불평등하다는 뜻입니다. 사회초년생(18 - 24세)의 빈곤율은 북유럽보다 낮습니다. 아마 학업과 아르바이트를 겸하거나 일찍 취업하는 사람이 북유럽에 비해 많기 때문일 것입니다. 북유럽은 무상에 가까운 교육시스템 덕에 굳이 일하며 공부할 필요가 없지만, 우리나라는 그렇지 않습니다. 한창 취업하고 자리잡을 시기에는(25 - 40세) 북유럽만큼 빈곤율이 떨어집니다.

문제는 그 다음입니다. 중년을 맞이하는 시기부터(40세 이상) 서서히 빈곤율이 오르기 시작합니다. 일찍 은퇴하는 사람이 많아져서 그럴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더이상 일하기 힘들 정도로 나이가 들면 빈곤율은 북유럽의 15배로 치솟습니다.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가장 노동시간이 길지만, 그 노동시간을 통해 삶을 개선하는 사람이 그리 많지 않습니다. 우리나라는 출발선부터 불평등합니다. 게다가 소득 분배도 지나치게 불평등하니, 사람들이 어렵게 취업해도 나이들면 빈곤해지기 쉽습니다. 열심히 노력하면 누구나 잘 살 수 있는 나라가 아닌 셈입니다.

우리는 주변 상황을 보며 미래의 가능성을 가늠합니다. 그런데, 열심히 노력하면 잘 살 수 있다고 믿을 만한 객관적인 근거가 부족합니다. 애써 부정성 편향을 억누르며 미래를 위해 시간을 투자하기에는, 월급이 크게 오르지 않는 부모, 한창 일할 나이에 내쫓기는 명예퇴직자, 열심히 일했지만 빈곤한 노인이 너무 많습니다.

뭔가 잘못되어도 단단히 잘못되었습니다.

통계 출처
2021년 빈곤통계연보 - 한국보건사회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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