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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완 Jan 15. 2023

좋은 문장의 기본기

과학적으로 근거 있게 문장 쓰는 법.


1. 중앙은행은 급격한 물가 인상이 감지되자 금리를 신속하게 조정하기 시작했다.


2. 중앙은행은 물가가 급격히 오르자 금리를 신속하게 조정했다.


3. 물가가 급격히 오르자, 중앙은행은 신속하게 금리를 조정했다.


or


중앙은행은 신속하게 금리를 조정했는데, 물가가 금격히 올랐기 때문이다.


세 문장의 차이가 느껴지실까요?


아래로 내려갈수록, 가독성이 좋은 문장입니다.


인지심리학자에 따르면, 독자는 글을 읽을 때 우선 앞에 나온 정보를 단기기억에 저장해야 하고, 앞에 나온 정보와 뒤에 나온 정보의 관계를 추론해야 합니다. 문장이 너무 길어서 앞에 나온 정보를 기억하고 있기 어렵거나, 문장이 너무 복잡해서 관계를 추론하기 힘들다면, 독자는 힘겹게 문장을 읽어야 합니다.


이렇게 기억하고 추론하는 데에 많은 노력을 쏟아야 하는 문장을 '가독성이 나쁘다'고 이야기합니다. 반대로, 독자가 정보를 기억하고 관계를 추론하기 쉬운 문장은 가독성이 좋은 문장입니다.


간혹 독자에게 최대한 많은 정보를 주고 싶은 마음 탓에, 한 문장을 몇 줄에 걸쳐서 늘어뜨리는 경우가 있습니다.


"독일에서 마르크스가 부각을 드러내기 전부터 활약한 페르디난트 라살은 고대 그리스 철학과 헤겔 철학을 공부하고 독일에서 노동운동을 이끌어서 독일 사회민주당의 전신이 되는 조직을 창설하여 보통선거와 국가의 생산자협동조합 지원 정책을 요구했지만 군주제 자체에 반대하지는 않아서 잠시나마 권위적인 보수주의자였던 비스마르크와 협력한 적도 있다."


이런 문장을 생각보다 흔하게 보셨을 것입니다.


이런 문장은 호흡이 너무 길어서 독자가 앞 부분을 기억하거나 무슨 의미인지 추론하기 어려운 문장, 다시 말해 가독성이 매우 떨어지는 문장입니다. 이런 문장을 쓸 때에는, 글쓴이 자신도 앞 부분을 잊어버려서 주어 - 술어 관계도 맞추지 못하는 일이 종종 벌어집니다.


'좋은 문장'에는 여러 기준이 있겠지만, 가장 기본이 되는 기준은 '의미가 얼마나 잘 전달되는가'일 것입니다. 문장이란 결국 소통하기 위한 수단이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절묘한 비유와 화려한 수사법으로 이뤄진 문장이라도, 독자에게 글쓴이의 생각을 전달한다는 기본 임무를 수행하지 못한다면, 무의미한 혼잣말로 전락할 수 밖에 없습니다.


오래 전에는 어느 나라를 가든지 복잡한 문장을 쓰는 사람을 지적이라고 평가했지만, 십수 년 전부터 경향이 바뀌었습니다. 폐쇄적인 학계에 보고하거나, 문장력을 겨루는 시험을 위한 글이 아니라면, 기사든 논문이든 에세이든, 독자를 위해 가독성이 좋은 문장을 쓰는 사람이 더 평가받고 있습니다.


실제로, 서구에서는 인지심리학이 발달한 1980년대부터, 언어학자와 심리학자가 가독성 문제를 적극 따지며 과학적인 수사학을 연구해 왔습니다. 대표적으로, 우리나라에도 '논증의 탄생'을 쓴 저자로 잘 알려진 '조셉 윌리엄스'나 인지 수사학을 연구한 '린다 플라워'가 있습니다.


조셉 윌리엄스는 저서 '스타일 레슨'에서 "일부러 썼든 무심코 썼든, 난해한 글들은 기본적으로 차단과 배제를 추구한다. 민주적 소통의 가치를 부정하는 글이다." 라고 말했습니다.


가독성은 단순한 취향이 아니라 일종의 덕목입니다. 같은 시기 다른 문화권에 비해 민주적 소통을 중요하게 여긴 고대 그리스, 로마인은 대중과 소통하기 위한 방법을 중요한 연구 대상으로 여겼습니다. 이런 전통은 현대에도 이어져서, TED 강의나 정치 연설, 글쓰기에 필요한 민주적 소통 방법은 학자와 리더의 교양으로 자리잡았습니다.


대중과 소통할 필요가 없다고 여기는 사람이 아니라면, 민주적인 소통을 위한 가독성 문제를 등한시할 수 없을 것입니다. 신분의 벽이 사라지고 모두가 유권자이자 소비자, 시청자이자 독자가 된 시대인 만큼, 가독성을 갖추는 일은 앞으로 계속 중요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모든 글은 결국 누군가와 소통하기 위한 것입니다.


참고 도서.

'스타일 레슨' - 조셉 윌리엄스

'글쓰기의 문제해결전략' - 린다 플라워

'독자와 대화하는 글쓰기' - 정혜승

'지식생산의 글쓰기' - 송창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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