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그렇다
우파의 사회주의 알레르기가 도졌다. 공공기관이 기업에 투자하고 수익을 받는 일이 사회주의란다. 어떻게 보면 맞는 말이다. 각자의 이기심이 알아서 좋은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는 환상을 거부하고, 경제 성과를 소수가 독점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 사회주의의 넓은 의미니까.
그런 면에서 현대 자본주의는 모두 어느정도 사회주의화되어 있다. 국유재산과 재분배 장치가 전혀 없는 곳은 없으니까. 다만 나라마다 사회주의 성분의 농도가 다를 뿐이다.
우리나라도 사회주의를 어느정도 채용하고 있다. 여러 기금과 국책은행이 정부에 매년 배당금을 보내고 있다. 빈약하지만, 아무튼 경제성장의 성과를 공공기관이 흡수해서 정부 재정에 보태고 있다. 사회주의라서 싫다고 하기에는 우리나라가 60년대부터 지금까지 하는 일이다.
사실 우리나라의 경제 방침은 공산주의와 확실히 거리를 두는 사회주의였다. 우파가 기를 쓰고 외면하는 사실이지만, 우리나라는 광복 전부터 경제 영역에서 상당한 사회주의를 도입할 것을 강령으로 삼고 있었다. 제헌 의회에서는 대놓고 '경제는 사회주의'라고 못박는 발언도 있었고, 제헌 헌법에는 사회정의를 재산권보다 앞에 두는 조항도 있었다. 당시 사람들도 알고 있었듯, 이 조항은 명백하게 사회주의적이었다.
"국가권력으로서 철두철미 민족주의로 나가야 되겠습니다. 그리고 경제면에 들어가서는 사회주의로 나가야 되겠습니다."
- 이정천 의원
우리나라가 사회주의를 채택한 것은 민족을 독재와 계급 전쟁으로 몰아넣지 않기 위해서였다. 당시 여느 동아시아 사람이 그랬듯, 우리나라 독립운동가들은 개인주의가 공동체를 압도하기를 바라지 않았다. 또한 개인의 이기심이 알아서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리라 믿지 않았다.
민주공화국이 제대로 기능하기 위해서는 소수가 경제력을 과점하지 못하게 막아야 했다. 경제 권력의 과점은 정치 권력의 과점과 다를 게 없었다. 독립한 나라가 모래알처럼 흩어지지 않고 강해지려면, 모든 국민의 능력을 최대한 개발할 뿐만 아니라 국민의 결속도 강화해야 했다. 이를 위해서는 국가가 사회문제에 적극 개입해야 했다.
"국가의 권력 그것은 용이하나 이는 개인의 모든 자유를 보장하기 위한 권력으로서 용인하는 것이다. (...) 그러기 위하여는 실제에서 개인의 자유 활동에 유해한 부의 편재를 수정할 필요가 있다. 여기 토지개혁, 중요 산업 국유화 등의 경제적 민주평등이 요청되는 것이다."
- 동전 오기영 선생
우리나라는 정부가 산업화를 주도하고 대기업과 해외무역을 관리하게 해서 균등발전을 이루려 했다. 이 강령은 거의 잊혀져서 '균등발전'만 흐릿하게 남아 있지만, 당시의 기록은 사라지지 않았다.
우리나라는 사회주의를 기본 가치로 채택했다. 물론 그 사회주의는 일당독재를 단호하게 거부하고 개인의 자유와 조화를 이루는, 케인즈가 말한 것 같은 '자유주의적 사회주의'였다. 따라서 단지 사회주의적이라는 이유로 어떤 정책을 거부하는 것은 실용성을 외면할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의 옛 기본 가치에 어긋난다.
참고자료
강명희, 동아시아에서 자유주의는 무엇인가, 한울, 2021.
최선웅, 1910년대 조선에서 자유주의의 두 가지 유형과 성격, 호서사학회, 역사와 담론 제75집, 2015.
오기영, 자유조국을 위하여, 도서출판 모시는사람들, 2019, 32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