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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을 모른다는 것

by 이완

한 친구는 부모님과 자주 다퉜다. 폭력도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그 친구는 부모님에게 유학을 갈 수 있을 만큼 지원받았다. 친척에게는 명절마다 수백만 원 씩 용돈을 받았다. 이야기를 들어보면, 친구네 집은 유복하지만 불행한 가정이었다.

몇 달 만에 연락이 닿은 그 친구는 자기계발 강사가 다 되어 있었다. 연설 내용은 대략 이렇다.

'연봉 7천이 넘는 사람도 하고 싶은 걸 참으며 돈을 모은다. 나도 해외에서 빠듯하게 살지만 저축을 잊지 않는다. 한 달에 100만 원을 벌더라도, 그 중에서 10%는 모아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아서 큰 돈이 필요할 때 대처하지 못하면 그 사람 책임이다.'

그 친구는 고소득자가 겪는 피로감과 저소득자가 겪는 불안감이 똑같다고 여기는 것 같았다. 행운의 비중은 과소 평가되었고, 노력이나 의지의 비중은 과대평가되었다. 그야말로 흔하고 비과학적인 자기계발론이었다.

물론 누구나 나중을 위해 저축해야 한다. 그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다만 몸이 안 따라줄 뿐이다. 미래를 전망하기 힘드니까. 빈곤할수록, 경제적으로 불안정할수록, 사람은 당장의 이득에 초점을 두기 쉽다. 어릴 때부터 큰 돈을 만져본 적이 없다면 더더욱 그렇다. 저축해서 이득을 본 경험이 없으니까.

이는 마시멜로 실험에서 드러난 결과이기도 하다. 마시멜로 실험은 단순히 의지력이 강한 아이가 성공한다는, 단순무식한 결론만 도출하지 않았다. 어른이 마시멜로를 줄 것이라고 신뢰할 수 있는 아이가 의지력을 더 잘 발휘했다는, 사회경제적 발견도 잊지 않았다. 여러 사람이 증명했듯, 어린 시절의 위력은 성인기에도 이어진다.

감당할 수 없는 빚을 내서 차를 사고 주식에 투자하는 사람,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살면서 인터넷 방송인에게 고액을 후원하는 사람, 여유롭지 않으면서 매일 스타벅스 커피를 들고 택시를 타는 사람 등등. 흔히 이런 사람을 마냥 한심하게 보지만, 사실 이런 사람이 많다는 것은 희망보다 절망이 확신했다는 증거일 수 있다.

간혹 궁핍하더라도 미래지향적으로 사는 사람이 있다. 흔한 자기계발 강사는 그런 소수 사례를 근거로 모두가 그렇게 할 수 있다고 강변한다. 그 사람이 주변으로부터 어떤 도움을 받으며, 어떤 유전적 행운을 누렸는지 따지지도 않고서 말이다.

'어떤 사람이 고난을 더 잘 견디는가'에 대해서는 과학적으로 밝혀진 것이 생각보다 많지 않다. 그저 가능성 있는 가설이 몇 가지 있을 뿐이다. 자기계발 강사가 아닌, 신중한 과학자는 사람 마음에 대해 완전히 밝혀냈다고 단언하지 않는다.

우리나라에는 가난한 사람이 많지만, 가난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유학 간 친구도 가난의 위력에 대해 전혀 알지 못했다. 어쩌면, 어릴 때 스트레스와 용돈을 함께 받은 사람은 더 편협해지기 쉬운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고소득, 고학력 극단주의자가 생기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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