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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표준'만큼 살고 있나요

2025년 표준 생계비, 285만 원

by 이완

한국노총 발표에 따르면, 2025년 단신가구의 한 달 표준 생계비는 285만 원 정도다. 여기서 표준 생계비란 노동자가 너무 부족하지 않게, 건강하게 사는 데에 들어가는 비용을 추정한 것이다. 한국노총이 조합원 중에서 표본을 고르고 그 평균 생활비를 계산한 것인데, 최저임금 인상의 근거 자료로 자주 활용된다.


물론 실제로는 285만 원보다 적게 쓰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285만 원은 어디까지나 노동조합원을 대상으로 조사하고 온갖 비용을 다 포함해서 계산한 평균치니까. 실제로 표준 생계비 자료를 비판하는 사람들도 좁은 조사 대상과 평균치라는 점을 주로 지적한다. 평균치 외에 중위값도 필요하기는 하다.


그럼에도 노동조합이 발표하는 표준 생계비는 귀중한 자료다. '빈곤하지 않음'의 높은 기준선을 가늠하게 해주기 때문이다.


흔히 빈곤의 기준선을 중위소득의 50% 미만으로 설정하지만 이는 지나치게 엄격한 기준이다. 2025년 1인 가구 기준 중위소득이 239만 원인데, 그 절반이면 119만 원이다. 주거비와 병원비, 각종 공과금을 빼면 정말 식비만 겨우 남는 수준이다. 계산하기 편리해서 유용하지만, 실제로 사람들이 느끼는 빈곤감을 충분히 대변해 주지 못한다.


그런 점에서 애덤 스미스도 중위소득 50%보다는 표준 생계비를 자주 인용할지도 모른다.


애덤 스미스는 절대적인 빈곤 뿐만 아니라 상대적인 빈곤도 중요하다는 것을 지적했다. 예를 들어 깔끔한 리넨 셔츠는 당시 노동자에게 생필품이라고 할 수 없었다. 그럼에도 애덤 스미스는 리넨 셔츠를 필수품으로 여겨야 한다고 강조했는데, 리넨 셔츠를 입지 않을 경우 밖에서 창피를 당할 수 있다는 점 때문이었다.


당시 영국에 리넨 셔츠가 있었다면 현대 우리나라에는 노스페이스 점퍼가 있다. 한 때 우리나라 중고등학생 사이에서는 노스페이스 점퍼가 유행했다. 거의 두번째 교복이라고 불러도 좋을 정도였다. 서울 한복판에서만 그런 것이 아니라 상대적으로 가난한 안양시 만안구에서도 그랬다.


대체 왜 가난한 사람들이 자녀에게 브랜드 점퍼를 사줬던 걸까. 그 폐해가 크다는 걸 수도 없이 겪었으면서도 왜 유행이 바뀔 때마다 브랜드 제품을 사주는 걸까. 가난한 사람들이 절제력이 없어서 그런 걸까.


사람은 상대 평가하는 동물이다. 주변 사람과 자신의 처지를 비교하며 자신의 사회적 지위를 확인한다. 그리고 자신의 지위가 떨어지고 있거나 너무 낮다고 여길 때 굉장한 불안을 느낀다. 그래서 어떻게든 남들과 비슷해지려고 노력한다. 이런 본성이 사람을 도덕적으로 만들기도 하지만, 노스페이스 유행처럼 과소비를 퍼뜨리기도 한다.


이렇게 말하면 '나는 안 그런데'라며 되도 않는 반박을 시도하는 사람이 꼭 나타날 것이다. 물론 누군가는 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노스페이스를 입지 않아도 잘 지냈을 것이다. 그럼에도 사람이 상대 평가하는 동물이라는 사실은 달라지지 않는다. 노스페이스 유행을 따르지 않은 사람도 어디선가는 다른 상대 평가를 참고했을 수 있다. 취업 면접이나 선을 보러 갈 때 트레이닝복 대신 양복을 입고 나갔다면, 남들처럼 상대 평가에 신경 쓴 것이다. 그런 상대 평가 없이는 시장 가격도 성립하지 않고 도덕적 판단도 성립하지 않는다.


사람을 다루는 학문에 100%는 없다. 사람마다 유전자와 어린시절이 조금씩 다르기 때문이다. 다만 세계 곳곳에서 인구 집단의 상당수가 비슷한 조건에서 비슷한 반응을 보인다는 점이 확인된다면 그런 반응을 인간의 경향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합리적일 뿐이다. 일상 속 여러 조건을 통제하지도 않은 채 '나는 안 그런데' 한 마디로 수 많은 샘플에서 얻은 결론을 이길 수는 없다.


애덤 스미스에게 빈곤이란, 단순히 굶주리는 상태를 넘어서 사회 구성원으로 받아들여지는 데 필요한 것을 구하지 못하는 상태다. 빈곤을 보는 이런 관점은 이제 상당히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우리나라가 최저생계비를 계산하지 않고 '중위소득의 몇 퍼센트'처럼 상대 빈곤을 계산하기 시작한 것도 이런 빈곤관과 무관하지 않다.


따라서 표준 생계비 자료는 사람들이 실제로 빈곤감을 느낄 수 있는 조건을 보다 폭넓게 파악하는 데 도움된다. 그리고 우리나라 사람 상당수가 저 표준 생계비를 충족하지 못하고 있다.


그 빈곤감은 사회적 지위 경쟁에서 탈락하고 있다는 치명적인 느낌을 초래할 것이고, 그 치명적인 느낌은 충동적인 행동으로 이어질 것이다. 법원 창문을 깬다든지, 사실도 확인하지 않고 악플을 단다든지, 깊은 고민 없이 극단적인 표퓰리스트에게 표를 준다든지. 그런 면에서 벤저민 디즈레일리 총리의 말은 굉장한 선견지명이다.


"오두막이 불행하면 궁전도 위험하다."


한국노총 2025년 표준생계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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