꼭 그렇지 않을 수 있다.
이번 연금 개혁안에 대한 비판은 대체로 혼란스럽고 두서 없지만,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뉘는 것 같다. 첫번째 부분은 곧 은퇴하는 5, 60대, 특히 기득권 중년의 소득대체율도 함께 올랐다는 것이다. '보험료는 앞으로 얼마 내지 않을 텐데 연금만 많이 받아간다. 그래서 불공정하다.' 이런 이야기다.
두번째 부분은 이번 개혁안이 기금 고갈을 잠시 미뤘을 뿐이라는 것이다. '지금 청년 세대가 노인이 되는 2060년대에는 결국 적립금이 고갈된다. 그러니 청년은 보험료를 납부해도 연금을 받을 수 없다.' 이런 이야기다. 여기서 국민연금이 미래세대를 착취하는, 폰지사기라는 비난이 도출된다.
1. 이번 개혁안은 기득권 중년에게 가장 유리할까
우선 첫번째는 국민연금에 대한 오해에서 비롯된 것 같다. 당장 2026년부터 연금받는 사람들이 모두 소득대체율 43%만큼의 연금을 받는다고 여기는 듯하다. 하지만 전문가들에 따르면, 국민연금은 그렇게 획일적으로 작동하지 않는다.
소득대체율은 소급적용되지 않는다. 2025년까지 납부한 보험료에 대해서는 기존 소득대체율로 연금을 계산하고, 2026년부터 납부한 보험료에 대해서는 소득대체율 43%를 적용한다. 이미 연금을 받고 있는 노인은 소득대체율 인상과 아무 상관 없고, 앞으로 몇 년 후에 은퇴하는 중년은 연금을 아주 약간 더 받게 될 뿐이다.
설령 소급적용된다고 해도 기득권 중년이 특혜를 받는다고 단정할 수 없다. 국민연금은 진보적인 사회보험이다. 위험에 공동으로 대비하기 위한 보험이자 재분배 장치다.
그래서 고소득자일수록 소득대체율이 낮다. 개혁 이전 연금 계산 방식을 기준으로 했을 때, 40년 동안 보험료를 낸 가입자가 전체 가입자 평균 소득보다 2배 정도 벌 경우 소득대체율은 30%로 낮아진다. 가입 기간이 15년이라면 고소득자의 소득대체율은 10%까지 떨어진다. 반면 전체 가입자 평균 소득의 절반 정도만 벌 경우, 소득대체율은 60%까지 올라간다. 가입 기간이 15년이라면 저소득자의 소득대체율은 20 - 25% 정도다.
다시 말해, 진짜 기득권 중년은 보험금으로 따지면 다른 사람보다 더 많이 기여하고 소득대체율로 따지면 더 적게 받을 예정이다. 소득대체율을 소급 적용받아도 마찬가지다. 더 많이 기여한 사람이 기여에 비해 적게 받아가니, 소득대체율 인상을 기득권의 마지막 한탕, 엄청난 불공정 행위라고 부르기 어렵다.
2. 청년은 보험료만 내고 연금은 못 받을까.
사실 두번째 부분은 대상이 어긋난 공포다. 그리고 너무 비관적이다. 일단 기금이 고갈된다고 해서 연금이 완전히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지금 청년의 자녀와 손자가 내는 보험료로 청년에게 연금이 지급된다. 즉, 적립식에서 부과식으로 바뀐다.
물론 출산율이 붕괴한 탓에 지금 청년이 은퇴할 때 즈음에는 보험료를 내 줄 사람이 부족할 것이다.
문제는 그런 상황에서는 '특단의 조치가 없다면' 국민연금이 아닌 다른 제도도 똑같이 위기를 맞게 된다는 점이다. 기초연금, 건강보험 등 모든 복지제도는 납세자가 더 많을 것을 전제하고 있다. 미래의 국민연금 가입자가 줄어들어서 연금이 사라진다면, 다른 복지제도라고 해서 무사하지 않을 것이다. 국방이나 교육도 마찬가지다.
다시 말해, 국민연금이 잘못 설계되었거나 폰지사기여서 문제를 일으키는 것이 아니라, 유례 없는 저출산 고령화가 너무 파괴적이어서 국민연금을 포함한 모든 국가 시스템에 문제를 일으키는 것이다. 국민연금 멱살만 붙잡고 역정을 내 봐야 해결되는 것은 아무것도 없고, 국민연금을 폐지한다고 해서 해결되는 것 역시 아무것도 없다.
그렇다면 우리 앞에는 절망 뿐일까. 낮은 세금과 작은 정부, 지나치게 엄격한 이민 장벽을 고집한다면 대책 없는 절망을 맞이해야 한다.
하지만 불로소득에 중과세하고 정부 재정으로 산업을 일으키는 동시에 노동시장 불균형을 바로잡는다면, 그리고 강력한 동화주의 정책을 전제하는 이민 개방을 준비한다면, 길거리와 감옥이 늙고 병든 사람으로 가득차는 고령화 디스토피아를 피할 수 있다.
이번 인구 위기만 잘 극복하면, 청년도 중년처럼 연기금에 적립금을 쌓는 입장이 될 수도 있다. 좁은 시야에 갇혀서 정치적 선택지를 다 잘라내지만 않는다면, 그리고 가능한 변화는 외면하면서 한숨만 쉬고 있지 않는다면, 우리에게도 희망은 있다.
가만히 있는 것이야말로 연금 소멸의 주 원인 중 하나다.
"서로 남의 짐을 져 주십시오. 그러면 그리스도의 율법을 완수하게 될 것입니다."
- 갈라티아 신자들에게 보낸 서간 6장 2절 (가톨릭 성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