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착 없는 사회는 절망한다
'카엘라 코발스키아'는 인도네시아의 버추얼 유튜버다. 그 쪽 팬들에게는 하루에 10시간, 12시간 씩 방송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얼마전까지 대학 생활과 유튜버 활동을 병행했는데, 그때도 방송시간은 비슷했다.
카엘라가 그렇게 할 수 있는 것은 유전적 행운 덕분인 듯하다. 본인이 밝히기를, 하루에 2시간만 자도 생활에 지장이 없다고 한다. 주변인이 다 걱정하고 있지만, 건강검진을 받았을 때 별다른 문제가 없었다고 한다.
수면은 인간의 기본 욕구 중 하나다. 그래서 수면 박탈은 굉장한 고문이다. 하지만 간혹 남들보다 짧게 자도 문제가 없는 '쇼트 슬리퍼'가 있는데, 카엘라가 그런 경우로 보인다. 적정 수면 시간은 유전자 단계에서 결정되는 것이라, 하루 2시간 수면은 훈련으로 도달할 수 없는 영역이다.
쇼트 슬리퍼가 있는 것처럼, 고독을 잘 견디는 사람도 간혹 있다. 그런 사람은 혼자서도 딱히 불행을 느끼지 않는다. 남들의 평가나 교류에 연연하지 않고, 사회적 스트레스에 둔감하다.
자칭 현자들은 그런 경지를 성숙함의 잣대처럼 이야기하지만, 사실 고독에 강한 사람 역시 유전적 행운을 누리고 있을 뿐인지 모른다. 사람은 철저하게 사회적인 동물이다. 사람은 사회 구성원에게 동료로 인정받고 사회적 연결망에 속하기 위해서라면 자신의 피부도 뚫을 수 있다.
특히, 사람은 소수의 소중한 사람과 좋은 관계를 맺기를 원한다. 누구나 불특정 다수가 아니라 가까운 몇몇 사람과 서로 보살핌을 주고받고 싶어한다. 소중한 사람의 인생에서 자연스러운 일부분이 되고 싶어하고, 소중한 사람에게 필요한 존재가 되고 싶어한다.
심리학자 로이 바우마이스터에 따르면, 이런 애착 욕구(need to belong)는 사람의 근본 욕구이자 주요 행동 동기다. 식욕, 수면욕처럼, 애착 욕구는 충족되어야만 하는 욕구다.
잠을 오래 못자면 몸과 마음이 망가지는 것처럼, 애착 욕구가 좌절되면 사람은 건강과 살아갈 의욕을 잃는다. 자살연구가 토마스 조이너는 애착 욕구의 좌절(한국식 표현으로 소속 욕구의 좌절)을 자살의 주요 원인으로 지목했다. 자녀나 배우자가 사망하거나 연인과 헤어진 사람은 남들보다 자살할 위험이 크다. 주변에 아무도 남지 않게 된 노인 역시 매우 위험하다.
오랜시간 관계를 이어온 동네 친구, 서로를 아끼는 연인은 건강하고 행복한 삶을 위한 필수 요소인 셈이다. 그런 필수 요소가 부족해도 잘 견딜 수 있는 사람은 그렇게 태어났다고 보는 편이 합리적일 것이다. 일반적으로는, 외로우면 행복할 수 없다.
어쩌면 우리나라의 자살률이 높은 주요 원인이 이런 애착 관계의 붕괴인지도 모른다. 최근 우리나라 청년 절반은 연애하지 않는다. 친구 없이 방에 틀어박힌 사람 수도 십만 단위다. 중년과 노년도 외롭기는 마찬가지다. 우리나라 30대 이상 인구의 14%에서 30%는 어려운 상황일 때 마음 놓고 의지할 상대가 없다. 우리나라의 경우 나이가 들수록 빠르게 고립되는 모습을 보인다.
한국에서 산다는 것은 쉽지 않다. 한국 사회는 폭력과 불합리함에 둔감하고 서로를 존중하지 않는 편이다. 특히 위계관계에 불필요하게 집착한다. 그런 관계 속에서 긴 시간 공부하거나 노동해야 한다. 사회관계 스트레스가 상당할 수 밖에 없다.
그런데 사회관계 스트레스를 견디게 해 줄 애착 관계조차 사라지고 있으니, 적지 않은 사람이 극한 상황에 내몰릴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자살은 그냥 일어나지 않는다. 우리나라는 사람을 자살하게 하는 곳이다.
사랑과 우정은 만화 속 단어로 전락한지 오래다. 물질주의와 권위주의, 체면 문화에 갇힌 우리나라 사람에게 서로 편하게 사랑을 나누는 상대란 다이아몬드보다 구하기 어려운 희소재다. 그래서 반응 좋은 인터넷 방송인이나 내 편을 들어주는 정치 유튜버를 대체재로 여기는 것이 아닐까.
참고자료
Roy F. Baumeister, Mark R. Leary, The Need to Belong: Desire for Interpersonal Attachments as a Fundamental Human Motivation, Psychological Bulletin, 1995, Vol. 117, No. 3.
윤일홍, 권해수, 우리나라 자살률 추이의 재해석: 좌절된 소속감과 유전자-문화 공진화론의 입장에서, 한국심리학회지: 일반, 2019, Vol. 38, No. 1.
토머스 조이너, 왜 사람들은 자살하는가, 김재성 옮김, 황소자리, 2012.